이철수 판화, 이철수 엽서 세트로 전하는 마음

 

 

고마운 사람이 생각나는 날이 있다. 고마운 사람에 대한 마음을 전하기에 무엇보다 좋은 것을 꼽자면, 아무래도 손편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편지는 당연히 손으로 쓰는 것인데, 어느날 부터 손편지라는 단어가 등장 했다. 손편지는 이제 연필이나 펜 등의 필기구로 직접 쓴 편지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손으로 하는 대부분의 창작활동에 손이라는 말이 구태여 붙은 이유는 그만큼 디지털에 익숙해진 우리들이 손으로 하는 창작활동 보다 손끝으로 금새 이루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보편적인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일테다. 덕분에 요즘 학생들은 악필을 보유한 아이들도 많아졌다고.

 

고마운 사람이 생각나는 날이 있다. 아무래도 연말이나, 연초, 학기 말과 같은 어떤 시작이나 끝을 알릴 때 우리는 그간 함께한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도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 어떤 정성으로 표현을 해 볼까 하다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적은 글씨로 고마움을 표현해 보기로 했다. 물론 직접 편지를 꾹꾹 눌러 쓴 것이기 때문에 간직할만도 하지만 '종이'라는 물성, 그 자체만으로도 굳이 내 글씨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가치를 가질만한 종이를 찾아보다가 생각난 것이 판화가 이철수씨의 판화다. 대형 서점, 예를 들어 교보 같은 곳을 오가다가 판화를 달력으로 엮어 파는 곳을 본 일이 있기 때문에 엽서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있었다.

 

시작이나 끝을 알리는 그 시점에 함께한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시작이 아니라 끝을 준비하는 중이다. 지난 2년동안 팀장으로 섬기는 동안 나와 함께해준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밖으로 나가서 직접 사 볼까 하다가 고질병, 게으름 탓에 결국은 나가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이득을 봐야겠다는 집념으로 열정적인 검색을 하게 되었다. 예스24에서 이철수 엽서 세트를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아이디를 까먹어서 그냥 일반 구매를 하려다가 신규가입을 하면 1000원을 할인해준다는 안내 문구를 보았다. 깜빡깜빡, 회원가입의 유혹. 덕분에 아이디도 찾게되고, 신규가입 혜택은 받지 못했지만 몇 년 전에 묵혀뒀던 마일리지라는 걸 사용하는 횡재도 얻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마일리지가 있었을 줄이야. 아이디만 찾고 무언가 득을 못봤다면 혼자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냈겠지. 어느날 집안 청소를 하다가 생각지도 않은 책장 사이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발견한 기분. 그래서 무려 5000원을 할인 받는 기쁨을 누려.

 

 

구입한 엽서는 모두 3 세트로 한 그림이 두장씩 세트당 10장이 들어 있었다. 세트 이름은 <꽃 소식>, <쉬는 자리, 집>, <당신의 길> 이러하다. 이철수 작가님의 작품을 알게 된 건, <책은 도끼다>라는 책 덕분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무척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더욱 빠져들게 한 건 이철수 판화가 가진 작품의 매력 때문이었다.

 

 

선 몇개를 넣었을 뿐인데, 꽉 찬 느낌. 점을 찍었는데, 새가 날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은 그의 판화가 디자인적 요소로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책에서 그는 이철수 판화가의 작품, 디자인과 구성에 대해 이렇게 칭찬했다.

 

마음을 먼저 빼앗긴 것은 텍스트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레이아웃도 안정감 있고 정돈되어 있는 것이 아주 훌륭했어요. 바디카피와 이미지의 구성을 늘 고민해야 하는 저의 입장에서 공부하기 좋은 견본이었죠. 레이아웃은 이철수의 판화뿐 아니라 우리나라 동양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광고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동양화의 세밀한 구성을 눈여겨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품마다 찍힌 낙관의 위치도 다 다른데 딱 그 작품과 어울리게 꼭 맞는 자리에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 책은 도끼다, 박웅현, p. 29 

 

 

판화 하나가 종이 한 장이지만, 여백에도 아름다움을 위한 노력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여전히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고 디자인을 잘 하는 사람들을 높게 여기며 텍스트는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큼 가치있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했던 팀의 특성 또한 매주 주보를 발행하고, 핸드북을 만드는 "문서를 만드는 팀"이기 때문에 우리 팀의 정서와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판화엽서를 누구에게 줄 것인지 몇 가지는 정해두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이 떠올라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오랜만에 훈훈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이 엽서는 나에게 주고 싶다. 갑자기 든 생각이라 뜬금없지만 나에게도 한 장 써 볼까라며.

 

 

사실 <당신의 길>세트가 예쁘다라는 느낌은 들지 않아 이 세트를 살까 말까를 고민이 많았는데, 위 당팽이 판화를 보고는 꼭 주고 싶은 친구가 있어서 사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달팽이 더디가는 걸음도 부지런한 제 길!' 그 친구는 참 느린데, 참 꾸준하다. 불평이 없고 성실하다.

 

 

<꽃 소식> 세트는 위에 엽서 때문에 샀다. 디자인 파트를 맡아 수고해 준 열정적인 친구가 생각나서.

 

 

엽서에 담긴 그림과 직접 정성들여 쓴 것과 같은 간단한 글귀가 그 사람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철수 판화가는 '그림으로 시를 쓴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판화가다. 엽서를 사기 전에 그의 작품집인 <나뭇잎 편지 시리즈>를 한 번 봤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도 했다. 요즘 따로 경제활동은 하지 않고 있어 돈이라는게 넉넉하지는 않지만 넉넉해 진다면 꼭 한 권은 소장하고 싶다.

 

 

그의 작품은 홈페이지 "이철수의 집(www.mokpan.com)"에서 만나볼 수 있다. 홈페이지에는 농부로서 살아가는 작가의 땀, 판화가 이철수의 작업과 이웃과의 일상이 담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림에 대한 저작권과 관련된 내용, 작품을 따로 소장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엽서 한 장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그립다면, 꼭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어서가 아니더라도 소장할 만하다. 보는 것 만으로도, 오래보고 다시보고 계속 봐도 따뜻한 정서가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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