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미 썬데이, 존재의 이유를 묻다

그러지 않아도 가을이라서 혼자만의 우울함에 심취해 있을 이 시기에 글루미 선데이 포스팅이라니 더더욱 글루글루글루우우미 하다. 우울함은 단지 우울할 뿐이다. 오늘은 '글루미 선데이'를 통해 존재의 이유에 대해 정리하겠다.

'자살의 송가' 글루미 썬데이는 1935년 헝가리 피아니스트 레조세레스가 작곡했다. 이 노래가 레코드로 출시된 이후 8주동안 187명의 생명이 삶을 포기했다고 한다. 심지어 글루미 썬데이로 성공하게 된 레조 세레스 조차 1968년 1월, 고층빌딩에서 투신자살 했다고 전해지며, 사회의 우울과 함께 찾아온 글루미 썬데이의 자살 신드롬은 결국 이 노래의 소멸을 가져왔다. 헝가리에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원곡을 모두 회수해 불태워 버려 현재 남아있는 글루미 썬데이는 모두 편곡이라고 한다. '자살'이라는 키워드로 이슈화 됐던 글루미 썬데이. 그러나 그 속에는 사실에 대한 과장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 모두가 '글루미 썬데이' 때문에 죽었다는 것은 과장된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 영화를 알게 된 지는 9년이 되었다. 청소년 시절 '그런 영화가 있대'라는 친구의 말로 알게 된 '글루미 썬데이'를 드디어 보았다. 글루미 썬데이는 언젠가 봐야지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이 영화를 둘러 싼 온갖 어두운 수식어들 덕분에 항상 'MUST SEE' 순위에서 밀려났던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는 큰 결심을 하고 본 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이제 사람, 사랑 그리고 존재를 생각한다.

Gloomy sunday, 사람을 생각한다


글루미 썬데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입체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아주 오래전 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인간본성에 대한 수 없이 많은 고민이 있었으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여전히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것 처럼 글루미 썬데이에서 그려지는 인간의 본성도 지극히 모호하다. 네 남녀의 사랑,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 질투라는 감정, 동전의 양면처럼 늘 붙어 있는 열등감과 우월감, 순수함과 비열함의 간격에 대해 우울한 시대상를 그리는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게 한다.      

Gloomy sunday, 사랑을 생각한다


반쪽이라도 갖겠다. 이 말이 사랑으로 감추어진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물건도 아니고 소유의사를 표시하는 남자들이 글루미 썬데이에는 있었다.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모르는 그녀의 반쪽이라도 갖겠다고 말하는 자보(조아킴 크롤 분)나 이 쪽도 저 쪽도 선택하지 않는 일로나(에리카 마로잔 분) 모두 필자의 입장에서는 우울해보이기 짝이 없었다.
영화의 초, 중반에는 제일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일로나였다. 그러나 '글루미 썬데이' 안에서의 시간이 흐를수록 일로나가 이해 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이유가 이 사람과 저 사람의 무게를 따지거나 비교하지 않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헀다. 무조건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는 세 남자(안드라스, 자보, 한스)와는 달리 진짜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를 일로나는 보여줬다. 그 어느 누구도 가지려 들지 않았다.
 
Gloomy sunday, 존재를 생각한다


영화는 위험하다. 영화의 메세지가 마치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 사랑을 했고 존재했던 한스(벤 베커 분)의 마지막은 존엄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그의 결국은 그토록 가지려고 노력하던 여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다. 자신 외의 존재에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그의 삶의 결론이다. 그의 행동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자살이 마치 최선의 선택이라도 되는 듯한 요즘, 영화에서 자보가 유서로 남긴 글을 거꾸로 생각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적는다.
사랑하는 일로나, 이젠 확실히 '글루미 선데이'가 뭘 얘기하는지 알겠어. 이렇게 최후를 기다리진 않겠어. 안드라스 뒤를 따를 거야. 자살은 인간의 존엄성이 마지막으로 사라졌을 때, 그 존엄성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이야. 난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 어차피 너무 늦었지만... 우리의 꿈이 깨졌다고 슬퍼하진 마. 견뎌내야 해. 내일 일은 내일 해.

대사 자체만으로 볼 때(사회적 상황를 생각하지 않고),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흠칫했다. 존재하는 모두는 존엄성을 주장하기 위해 싸워야만 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란 자보의 마지막 말 처럼 '내일 일은 내일'이라고 말해 놓고 덮을 정도의 존재가 아니다.   

글루미 썬데이
감독 롤프 슈벨 (1999 / 독일,헝가리)
출연 에리카 마로잔,조아킴 크롤,스테파노 디오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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