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삶을 공유한다는 것 그 기쁨

 

만득이와 곱단이의 사랑이야기로 더욱 기억에 나는 작가, 박완서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작가, 소설가, 저자 등으로 부르고 싶지는 않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이후 공손하고 다소곳한 목소리로 '선생님'하고 불러보고 싶어졌다. 문득 생각이 든다.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선생님'하고 불러본 게 언제던가.

 

 

소설가의 에세이는 작품으로만 알던 작가와 친밀함을 느끼게 한다. 선생님의 소설은 몇 권 읽어본 적이 없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다가 <나목>도 찾아보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찾아봤다. 그러면서 예전에 언제 쯤엔가 한 번 '읽어야지..'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또 그러했다.

 

소설로 만나는 소설가의 내면과 산문으로 만나는 소설가의 내면은 같은 사람이라도 약간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소설을 읽을 때는 줄곧 나도 모르게 소설 속 화자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에세이는 다르다. 그 다음 내용 때문에 마음을 쓰며 읽지 않아도 되니 글을 읽으며 나는 '아, 그렇군요'하면 그만이다. 대신에 틈틈이 내 생각도 정리해 볼 수 있고, 그 또는 그녀의 일상에서 나의 일상을 빗대어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소설가의 소설이 아닌, 다른 한 권의 책으로 선생님의 내면을 마주하며 문장이 숨쉬는 것을 목도한다. 주로 책을 읽게되는 지하철에서는 내릴 때가 되면 내리기가 싫어지기도 했다. 그 정도다. 게다가 우리말이 얼마나 예쁜지 읽으면서 신기하고 생각할수록 오묘했다.

 

 

선생님은 다른 할머니들과는 달랐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터 생각하는 힘, 글을 쓰는 일련의 수고에 대한 경외감이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글을 읽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우두커니 멈춰서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했을까.

 

책에는 선생님의 일상과 과거, 삶과 가치관, 책과 사람들이 담겨 있었다. 특히 자연에 대한 이 사람의 생각은 도무지 따라갈 길이 없다라는 생각도 들었으니 글을 쓰려면 빠르게 사는 것이 그다지 쓸모가 없고 도시공기보다 시골공기를 마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현재 20대를 살아가는 나와 같은 또래의 청년들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꼭 읽었으면 좋겠다. 그대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가장 빛나는 한 때를 보내고 있긴 하지만 전쟁을 모르고 배고픔을 모른다. 정치에 대해 무지하고 가치관이 붕괴된 우리들은 스펙을 쫓고 돈을 쫓고 즐거움을 쫓는다. 그리고 뇌에서 동기와 정서를 담당한다는 변연계를 다스릴 줄 몰라 중독되기 쉽고 절제는 어려우며 내 감정에 치우치기 쉽다. 그래서 읽었으면 좋겠다. 인문학공부를 한다며 니체와 공자를 읽기 전에 우리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한 사람을 통해 몇 가지 생각해 볼 거리들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본 한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우리나라가 얼마나 아픈 나라인지를 돌아보게하고, 할머니의 월드컵 사랑으로 2002년 월드컵의 감동에 다시 환호해 보기도 했다.

 

 

때로는 선생님의 글에서 완고함과 고집스러움이 뚝뚝 묻어났다. 간혹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집스러움 때문에 제법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는데, 이런 좋은 현상으로 작용하는 '고집'은 고집하는 개인이 가진 자신만의 철학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가끔 그 고집스러움이란 꺾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고 지켜주고 싶은 가치가 되기도 한다. 선생님이 책을 통해 일러주신 것들이 이해 안되는 부분들도 몇 가지 있었지만 (개인이 가진 고집이면서 매력적이지 않은 부분으로 보여졌기 때문이겠지) 흙과 가까이 하는 매일과 죽음에 대한 생각, 삶에 대한 통찰, 어릴적 치기어린 교만, 나라에 대한 사랑과 역사의식 같은 모든 생각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공유해줘서 무척 기뻤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의 작가 박완서 선생님은 선생님이라 부르는 나를 보고는 너는 누군데 '선생님, 선생님' 하냐고 물으실지도 모르지만, 당신의 글 덕분에 내가 조금은 변했다고 말씀 드린다면 '그렇게 부르거라' 하시려나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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