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 산다는 것, 노인이 아닌 어른으로
- 소울푸드: 리뷰/그리고 책을
- 2013. 6. 17. 11:36
막상 스무살을 훌쩍 넘기고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게 되니 '어른'이라는 두 글자의 정의가 무척 낯설다. 열살이 되기 이전에는 '어른'이란 나에게 막연한 워너비였다. 컴컴한 10대를 보낸 나에게 '어른'이라는 글자는 별 볼일 없는 대상으로 존재했다. 무능력하고, 책임지기는 싫어하면서 권위적이기만 한 불필요한 존재. 그리고 스무살이 넘었을 때, 사회에서는 '성인'이라 불러주긴 했다. 그러나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음을 알게 된 지 8년. 스스로도 아이와 어른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이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시대가 모호한 경계를 계속해서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게된다.
사전에서는 '어른'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어른1 [발음 : 어ː른] 명사
1 .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비슷한 말] 장자(長者).
2 .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비슷한 말] 장자
3 . 결혼을 한 사람.
4 .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5 .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자네 어른께는 상의드려 보았는가?
이상과 현실이 다르고 교과서와 실제가 다른 것 처럼, 어른이라는 말의 사전적인 정의도 우리가 기대하는 그것과는 다르다. 다 자란 사람을 어른이라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다 자라는 기간이란 게 언제까지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몸은 거대하게 다 자랐다 할 수 있어도 실제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전적 정의에 있는 2,3,4번은 고사하고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책임지는 일은 피하고 싶어하는 다 자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나마 직장이나 사회에서 책임지는 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들을 배워나가고 있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은 책의 초반부에 나잇값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는 어른과 피터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김혜남 작가의 책은 올 해 들어 두 번째, 지난 3월에 읽게 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는 정신분석을 토대로 삶이 사랑과 연애로 성숙해 나가는 부분들을 이야기 했다면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삶에 서툰 이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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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값이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누리게 된 자유에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책임과 자유는 함께 오는 것이므로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눌릴 필요도 없고, 자유라는 상쾌함에 너무 들뜰 필요도 없다는 것, 두 가지를 모두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 에서는 어른을 이렇게 정의한다.
어른은 별다른 게 아니다. 어른이란 제 인생의 짐을 제가 들고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중략) 그 짐은 무겁고 힘들지만 좋은 점도 참 많다. 부모님이 내 짐을 들어 줄 때는 싫든 좋든 부모님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 짐을 내가 드는 순간 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중략) 물론 그러다 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내 선택에 의한 것이기에 기꺼이 책임을 질 수 있다. 내 짐을 내가 들고 인생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 인생길을 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만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아마도 그것이 나잇값의 대가로 얻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책은 현대사회에 피터팬 신드롬이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현상에 대해 사회적인 배경, 문학작품 등을 빌려 차근차근 설명하며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래서 꼬꼬마 때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다 자라고 보니 현실에 부딪혀 영원한 어린이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시대의 피터팬들에게 이 책은 꼭 필요하다. 피터팬 증후군에 대해서는 몸만큼 마음이 성장하기 어려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책은 당신이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때를 보내고 있는지, 살아가다가 어느 부분에 지쳐있는지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당신에게 다가 올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 사람마다 영향을 받는 부분이 다른 것 처럼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는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개인이 마주한 어린아이가 살 것 같은 마음 속 어느 한 부분을 직면하게 한다. 나이에 대한 부분, 책임감과 두려움에 대한 부분, 행복에 대한 부분, 늙어감에 마주하는 부분 등의 곳곳에서 말이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나이를 먹거나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어른이 되지는 않지만, 책에서 말하는 어른의 기준이란 게 꼭 힘들거나 어렵지만은 않다. 어른이 되는 법은 사랑할 줄 알고, 이별의 감정을 받아들이며, 나이드는 것 또한 삶의 일부로 바라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이런 것들이다.
칼로저스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유기체라 정의했다. 그는 "여기와 지금(here and now)"을 강조했다. 지금 여기에서 맘껏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나이 들어가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만사가 불만스러운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어쩌면 과거 경험을 지나치게 강조한 정신분석 보다는 지금 그리고 여기를 강조하는 '인간중심 치료'가 어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에는 더욱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과거와 현재의 끈을 이어 주는 것에 있어서 정신분석은 탁월하기에 그 부분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정신분석 하나로는 어른이 되기 힘든것도 사실이다. 정신분석 이후 스스로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두가지가 있다면 '지금, 여기'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이렇게 기록해 둔다.
어른 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책은 말하고 있지만, 필자의 결론은 결국 이러하다. 누구나 노인은 될 수 있지만 어른은 아무나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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