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건축가, 사람과 건축 그리고 건축가 정기용

 

이야기 해줄 것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건축가 정기용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하는 건축가>는 그의 인생과 더불어 정기용 건축전 '감응: 정기용건축'(2010.11.12-2011.1.30)의 준비과정을 담았다. 재미있게도 정기용 선생님 이름 세글자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초록색 책 한권이다. 제목은 <서울 이야기>인데, 건축을 공부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던 20대 초입 어느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읽겠다며 한 손에 꼭 쥐고 다니던 책이다. 책의 4분의 1쯤 읽었을 때 동기들이랑 함께 놀러간 누군가의 집에 두고 온 기억으로 추억되는 책이다. 돌려달라고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돌려 받지를 못해서 마저 읽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그 책, 다시 처음부터 다시 읽을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영화를 장르로 구분하자면 지극히 다큐라 선택해서 보기까지는 확신이 없었다. 이왕이면 시간을 들여보는 모든 문화적 소산물은 재미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터라 혹여 너무 재미없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컸다.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끝을 맺지 못하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영화를 모두 보고나서 재미의 여부로 <말하는 건축가>라는 작품을 판단하는 것은 삶에 대한 여러가지를 놓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재미 이상의 감동은 물론 삶에 대한 철학, 그 씨앗을 보는 이에게 하나씩 던져 준다. 일민 미술관과 전시하기로 계획하면서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거든"하는 그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죽음을 따뜻하게 맞을 수 있는 태도를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을 공부하는 건축학도는 물론 열정을 갖고 사는 삶이 궁금한 모두가 보았으면 한다. (건축을 지금 공부하기 시작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시청각자료이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컨텐츠다)

 

정기용 건축가가 건축에 한 획을 그었다 할 수 있는 사람인지라 영화에는 굵직한 대가들이 건축에 대해 그리고 정기용 선생님에 대해 한 마디씩 보탠다. 우리나라 건축가 1세대는 김중업, 김수근으로 이야기되는데 정기용은 2세대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평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그에 대해 건축이라는 것이 사회에 어떤 도구가 되어야 하는가를 온 몸으로 실천한 사람으로 이야기 하면서 그 이전에는 없었다고 했다.

 

일민 미술관은 전시기획을 할 때 정기용의 건축에 대해, 그리고 그의 지성을 담고자 했다. 다음은 전시를 흔쾌히 동의한 이유에 대한 그의 말이다.

 

지금 사회는 건축가를 개발업체의 하수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살았을 때 미진하더라도 건축가를 제대로 봐달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들은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고, 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막다른 길이다. 개발적 부의 가치에 대해 충분히 연습했다. 재테크가 아니라 문화테크다. 기로에 선 한국의 민중에게 건축의 방향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문화로 눈을 돌릴 때다.그림 전시만 문화가 아니다. 건축과 소통해야한다. 그림보다 건축이 더욱 일상적이지 않느냐.

 

 

영화는 정기용의 인생과 그가 말하고 싶은 건축과 도시에 대해 초점을 맞추면서 사회의 이슈들을 정확하게 꼬집는다. 화려해서 동대문 월드 디자인 파크 국제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자하디드의 작품과 그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솔직하게 담았다. 필자 역시 자하디디의 설계안보다 다른 것들이 더 좋겠다는 입장에서 우려하며 바라보던 동대문 운동장은 역사의 흔적은 간데 없이 사라졌고, 완공되고 나서는 실질적인 운영과 비용, 공간의 효율성 문제로 속 꽤나 썩이는 건축물이 되었다.

 

다음은 동대문 운동장을 바라보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다.

 

정기용       자하디드 공사비가 평당 거의 2000만원이다. 집장사의 집이 평당 200만원이다. OO 중학교 평당 300만원이다. 그런데 평당 1500-2000만원 하는 건물과는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이다. 건축이 명품이 되는 것, 그 명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자하디드의 자존심에 돈을 투자하는 일이다. 건축가의 자존심에 수백 수천만원 바르는 것은 과다하다.

 

유걸          좋은 건축물을 갖는 것이 시민들의 자산이 되는데 공공건축은 목적 자체가 공공이므로 퍼블릭 스페이스가 메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좋은 건물이 드물다.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라 생각된다. 서울은 시청, 축구장이었다. 그런점만 갖고 이야기하자면 그 건물은 너무 건물로만 생기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승효상       역사를 건축을 통해 두자. 지형의 복원, 기억의 복원을 위해 스탠드도 남겼고 타워도 남기고 성벽을 복원하고 물도 남기고 운동장과 언덕을 다 남겼다. 서울의 성벽은 복원 되었으며 좋겠다. 지금도 그렇게 지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성룡        장소에 대한 대답을 했어야 했다. 공공적 성격을 읽는 것, 물리적인 것, 역사, 시민들의 인생 속에 기억되는 조그만 파편들, 그런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선과 장소가 만들어질 때 또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이전의 역사와 중첩되어 질 때 좋은 건물이 될 수 있다. 도시의 의미와 함께 갈 때 상징적인 건물이 된다.

 

 

영화는 동대문 운동장 프로젝트 뿐 아니라 무주 공공 프로젝트,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기적의 도서관과 공공건축에 대해서 기록한다. 전시를 진행하는 동안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고 전시가 잘 진행되고 있지 않는 모습이 보일 때 "밤새고 해"라는 정기용 선생님의 한 마디는 공부할 때 교수님들께 익숙하게 들어왔던 말이라 참 친숙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건축가의 고집이 뚝뚝 묻어난다.

 

전시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오픈된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보여준 그의 기록들, 한 길을 마주한 정기용 건축가의 기록은 그의 열정을 오롯이 보여준다. 찾아온 관람객들에게 인터뷰 중 "이 정도 살았을 때, 이 정도가 생기는 것이구나 (메모의 양)"라는 이야기는 그의 살아온 인생을 잘 담아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영화 중간 중간 삽입되는 건축가가 찍은 영상과 그가 설계한 건축물을 찾아가 영상미를 더해 담은 영상 덕분에 영화의 풍미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다.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로 설계된 건축물들은 꼭 한번 찾아가 마주하고 싶다. 

 

전시 이후 찾아간 무주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목욕탕에 찾아가 마을 주민에게 묻는다.

 

"혹시 목욕탕 만드신 분에 대해서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못 들어봤지"

 

마을 주민들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던 목욕탕을 만든 어느 건축가의 이야기, 누군가는 알고 고마워하고 있겠지. 그리고 그의 수고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꼭 하루를 잡아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 차를 빌려서 멀리 있는 목욕탕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목욕이 하고 싶은 날에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는 건축가 (2012)

Talking Architect 
9.2
감독
정재은
출연
정기용, 승효상, 유걸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5 분 | 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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