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모자란 2%는 이순신의 성품과 위대한 승리로 채운다
- 소울푸드: 리뷰/오늘은 영화
- 2014. 8. 4. 22:33
긴 말이 필요없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창작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몹시 조심스러워 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2012년에 무려 두 번이나 본 <광해>는 도무지 고민만 하다가 쓰지를 못했고, 영화 <26년>은 쓰면서 너무 불편하고 불쾌해서 영화이야기는 빠진 영화리뷰를 적어놨더라. 지금 읽어보니 온통 다른 이야기만 하다가 마무리를 한 기분이 드는 글이다. 그 때는 그렇게 써야지 의도했던 것 같지만, 다시 읽어보니 글이 별로.
<명량>은 위에 언급한 두 영화보다 더욱 실제를 담았음에도 거칠것이 없다. 이유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가진 힘 때문이다. 칭찬은 아무래도 쉬운 일이다. 그가 가진 명성 뿐 아니라, 그의 업적과 성품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감상평을 쓰는 일은 '이순신'의 놀라운 업적을 곱씹으며 즐겁게 쓸 수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화 <명량>은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어진 티가 나는 영화다. 제작노트를 살펴보니 이순신을 이해하기 위해 <난중일기>를 수도 없이 보았다고 한다. 이 뿐 아니다. 조선 판옥선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각종 사료와 실제 복원되어 있는 배들을 조사하고 실측해 실사이즈(30m)인 배를 건조했다. 왜군의 안택선은 일본 나고야 박물관 등 주요 박물관을 조사하고 임진왜란 당시의 사료들을 조사해 가장 비슷한 근사치를 갖는 배를 제작했다고 한다. (씨네21 참고)
수고에도 불구하고 초반 CG 작업은 엉성한 느낌을 주는 것이 굉장히 아쉽다. 영화 첫 부분에 들어가는 왜군의 배들을 보여주는 장면이 어색하고 해상도가 맞지 않게 보인것은 눈의 피로감 때문인가 아니면 정말 엉성하게 만들었기 때문인가를 영화 초반부터 고민해야 했다. 특히 초반에 명량대첩이 있기까지 (임진왜란 6년,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당면한 위기)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축약해 설명해주는 부분의 CG는 아쉬움이 배 이상이었다. 유독 엉성하다고 느낀 부분이 초반에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중반, 후반에 가면서는 작업자가 퀄리티를 높여 작업을 해서 그리했는지, (사실 CG 작업을 하다보면 작업량이 늘어가면서 실제로 기술이 늘기도 한다) 아니면 초반 중반 후반의 작업자가 각기 달랐고 감수가 미비했던 탓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필자의 눈이 해당 퀄리티에 적응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훌륭한 전투,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인물을 그린 영화가 조금 더 퀄리티에 욕심을 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큰 것만은 확실하다.
김태성 음악감독이 전하는 영화음악도 큰 감흥은 되지 못한다. 특히 해전신에서는 "나 웅장하지? 웅장해? 두둥두둥!"하는 것만 같았다. 128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단 하나의 음악도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다보니, 지극히 개인적인 평이긴 하지만 영화 <명량>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소리의 다양함과 감성보다는 무조건 소리를 크게해서 압도하려는 느낌 뿐, 그 뿐이었다. 음악이 잘 된 영화를 보고나면 하나 쯤은 OST를 찾아보고 싶은 곡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곡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그러하다.
명량대첩의 핵심인물 구루지마(류승룡 분)에게는 무척 미안하지만 머리털이 잔뜩 달린 뿔달린 투구를 쓰고 날뛰는 모습을 볼 때는 자꾸만 웃음이 났다. 필자만 주책없이 웃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무게를 잡다가 제대로 힘 한번 못 써보고 처참히 죽어버린 것도 아쉬운 요소로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게감에 대비되는 후반부의 모습에 자꾸 웃음이 났는지도 모른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구루지마가 희화화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전반부에 소름끼치게 잔인하고 냉정해보이던 그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해전신이 시작되니 어울리지 않게 순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뿔달린 투구를 쓰고 여기저기 뛰는 모습이 왜 그렇게 코믹해 보이던지.
이렇게 저렇게 부족한 2% 아니, 20%는 성웅이라 칭송받는 이순신 장군의 묵직한 캐릭터로 채워진다. 그와 함께 했던 다른 사람들의 캐릭터, 역할은 크게 기억에 남지 못했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에 남은 이름은 '이순신'이다. 이 부분도 아쉬운 점이긴 하지만, 그가 가진 인간적인 고뇌와 외로움은 영화에 몰입하기에 충분한 요소로 통했다. (물론 몇몇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이 너무 흐릿해서 지루한 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
배우 최민식은 이미 대답이 없는 그에게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셨습니까?"라고 묻고 싶었다고 한다. 국보 제 76호로 지정된 <난중일기>를 마르고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찬양 일색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빈틈이 있을 것이다라며 인간적 면모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마저도 빈틈을 찾으려다 오히려 감동했다는 것이 최민식의 인터뷰 내용이다. (씨네21 NO.964)
그가 했던 이런 고민들을 다른 배우들도 비슷하게 했을 것이다. <명량>에서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명량>의 승리가 영화로 보여지는 현재이지만 위대한 승리로 보이고, 부족한 부분을 잊을 수 있었다. 해전신에서는 무엇보다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곳에서 계속해서 노를 젓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유독 감동을 받았던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소울푸드: 리뷰 > 오늘은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스텔라,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 그리고 아버지 (9) | 2014.12.01 |
---|---|
카트, 비정규직 혹은 정규직 우리 모두의 이야기 (14) | 2014.11.25 |
말하는 건축가, 사람과 건축 그리고 건축가 정기용 (9) | 2014.07.02 |
치코와 리타, 음악을 위한 영화 (라틴재즈 그리고 해피엔딩) (8) | 2014.06.23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복잡한 세상에 더하는 진한 여백 (8) | 2014.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