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육아에 대한 간단한 고찰, 어쩌다 그녀들은 독박을 뒤집어 썼나

 

 

 

 

"아기 봐줄 사람 있어?"

 

임신을 하게 되면서, 그리고 출산 직후 많이 듣게 된 질문이다. 연애는 물론 결혼, 임신과 출산, 그리고 심지어 육아에 문외한인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질문을 듣고 생각하길 내가 낳았는데 누가 봐줘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사람 8개월 차. 여전히 별 생각은 없다. 어느 정도 자라면 잠깐씩 어린이집이라는 곳도 갈 테고, (물론 남편은 어린이집 반대파라서 좀 어쩔까 싶은데 그럭저럭 크겠지 생각을 한다. 무슨 일이 있을 때면 마음과 머리를 비우고 움직이는 타입이라 출산과 육아도 나에게는 '무슨 일'에 속했고 이건 예상했던대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뭔일 났다는 심정으로 육아를 마음과 머리를 비우고 나름 성실하게 수행 중이다.

 

 

"나 완전 독박육아 예정이야."

 

독박육아라는 어마무시한 단어는 조리원에 들어가서 처음 듣게 된다. 처음 듣고 확 올라오는 거부감에 굉장히 거북스런 단어였다. '독박'이라니. 육아 앞에 독박을 붙였다. 어딘지 우악스러운 단어다. 몰랐는데, 이런 단어가 있더라. 단어를 곱씹으며 생각해보니 국어사전에 적힌 '심하게 자주 독촉함'이라는 뜻은 아닌 듯하다. 물론 아기가 심하게 자주 독촉한다. 어머 얘는 왜 안자고 나를 찾는다니, 어머 왜 이렇게 운다니 하던게 8개월 넘도록 나아질 기미 없이 강도가 업그레이드 될 뿐.

 

독박육아의 독박은 아마도 고스톱에서 유래된 듯 하다. 다른 사람 몫의 돈까지 물어줘야 하는 상황을 독박을 썼다 하더라. 어쨌든 '독박'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그 독박 제가 한 번 써보겠습니다."

 

독박육아 예정이라던 조리원 동기의 독박은 제법 작은 독박이었나 보다. 문제는 그 독박이라는 걸 굳이 내가 온 몸으로 체험 중이라는 것. 

 

우악스런 독박육아라는 단어를 평소 입에 담지 말아야지 했지만, 제법 많은 엄마들이 이걸 경험 중이라는데.

 

 

너도 나도 부재중 남편, 부재중 아빠를 만드는 야근의 일상화

야근이 너무 많다. (회사 생활 다들 아시죠?) 심지어 결혼 전에 다니던 회사는 철야도 많았다. 결혼 전 학생이던 남편은 결혼 후 입사하기로 한 회사를 놔두고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원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올 해 대기업이라는 곳에 입사했다. 2월부터 회사에 다닌 남편을 5월이 될 때까지 시간으로 따져 총 2주는 봤으려나 싶다. 과장이 아니다. 남편이 실제로 집에 들어온 날이 2주가 될지 싶다. 연수라는 걸 했고, 연수는 곧 합숙을 의미했다. 두 달 넘게 생후 6개월된 아기를 혼자 이고 지고 웃기고 달래고 해야 했다. 그랬더니 아기가 8개월이 되었네?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

 

놀라운 사실은 남편은 아직 연수 중이라는 것. 이번에는 사업부 연수를 받는다는데, 다행히 출퇴근을 하는 연수다. 이번 연수를 약 2주 정도 받고, 또 다시 합숙과 연수가 계획되어 있다는 어마무시한 사실. 아마 남편이 연수라는 걸 모두 다 마칠 때면 아기는 첫 돌을 맞이할 예정이다.

 

연수라는게 끝난다 하더라도 남편의 퇴근시간이 완벽하게 보장되지 않는다. 회사원 대부분이 그렇다. 회사원만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 대학원생이던 남편은 매일 밤 열한 시가 되야 집에 왔다. 이제 신입사원이 된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온다. 연수 후에는 집에 매일 온다하더라도 저녁시간과 여가시간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하는 이유가 이 다음에 야근하기 위해서라는 개그가 실은 처절한 현실이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는 아빠를 무척 좋아하고 따르지만 정작 아빠가 아이와 지낼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남편이 집에 아주 늦게 들어오는데 가계 통장 잔고가 0원, 마이너스 아니면 다행

일을 아주아주 많이 하니까 형편이 좋아야하는데, 통장 잔고가 형편없다. 이제 신입사원이 되었으니 당연하다지만, 웃프다. 정부에서는 젊은 청년들에게 결혼을 하라며 아이를 낳으라며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겠다며 그럴듯한 정책들을 남발하거나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결혼해서 아이 낳고 키워보면 현실은 퍽퍽한 고구마다. 물론 결혼을 내가 좋아서 했고, 아이도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므로 이런 선택들이 정부를 믿고 한 선택은 아니다. (그렇게 믿을 만큼 든든하지도 않고)

 

그러나 아이와 단 둘이 집에 덩그러니 남겨져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라면 너무 힘들 때, '남편 언제오나, 나도 나가고 싶다, 날씨가 좋으면 뭐하나'라는 생각하게 된다. 남편과 통장 잔고 둘 다 있는 현실적인 삶을 원한다.

 

솔직한 심정으로 남편이 워낙 늦게와서 통장 잔고가 제법 넉넉하다면, 가끔은 누군가가 우리집 청소도 해주고, 혼자 급하게 차려 아무거나 입에 집어넣는 나를 위해 밥도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상상일 뿐이다. 우리나라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시간과 돈 모두를 가져간다.

 

 

아이를 맘 놓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의 부재

우리나라가 인구절벽을 마주하게 된지 오래다. 나라에서는 하나는 외롭다며 둘을 낳으란다. 지자체마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활발하게 시도하기도 한다. 동시에 뉴스에서는 자질이 없는 일부 어린이집 교사들의 문제점들을 심도 깊게 다룬다. 문제가 있다면 제대로 파헤쳐 주는 것도 미디어의 몫이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갈 곳이 없다.

 

물론 둘째를 낳을 예정이다만 양육비에 대한 부담부터 첫째 아이를 믿고 맡길 곳에 대한 염려까지 생각할 것이 많더라. 사람마다 다르지만 입덧이 극심한 스타일이라 아이가 어린이집이라는 곳에 적응을 하고 좋아하게 되면 둘째를 만나야지라고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뉴스를 봐도 주변을 봐도 변변치 못하다. 아이 둘 이상을 집에서 양육하는 엄마들을 보면 원더우먼, 슈퍼우먼 같더라. 이런 경우도 스스로를 독박육아라 칭하는 엄마들이 많은데 자녀를 사랑으로 잘 돌봐주는 곳이 있다면 굳이 '독박'이라는 단어까지는 안 나오겠지라는 생각이다. 괜찮다고 소문난 곳은 대기가 워낙 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순서를 기다리면서 뾰족한 방법이 없어 끙끙 거리며 끼고 있는 엄마들도 있다. 국립 유치원이면서 좋다는 곳은 신청해두면 짧으면 1년, 길면 3년까지 기다린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가정 어린이집, 사립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있지만 엄마들에게 비용적인 문제도 있으면서 교사 처우가 워낙 열악해 '안심'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열정페이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도 대단하게 자리 잡고 있단다.

 

 

핵가족으로 살아서 조용하고 단출해

<오래된 미래 전통육아의 비밀>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애착육아를 말한다. 책을 읽으며 안아달랄 때 안아주고, 먹고 싶어할 때 먹여야지 했다. 그런데 생각처럼 수월하지 못하다. 책에는 전통육아에 대해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이모가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현실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 늦게 오는 남편, 친인척이 멀리 살아서 달리 도움을 청할 데가 없는 경우도 많더라.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시댁은 불편하고, 친정은 미안한 그녀들  

달리 도움을 청할 수 있더라도 문제다. 엄마가 워킹맘이 된 경우 할마 할빠라 해서 황혼육아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지만 이 또한 독박을 피한 것은 아니다. 독박의 몫이 오롯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옮겨갔을 뿐 그녀들은 불편하게 일을 나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릎이 아프고, 아이들은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상황이 연출 될 뿐이다.

 

가까이 산다 하더라도 시댁에 아이를 함께 봐달라기가 또 불편하다. 아닌 경우도 많지만, 시어머니가 워낙 잔소리가 있으시거나 함부로 판단하시거나 등의 이유로 불편할 수 있다. 시아버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원래 가족이 아니었던 어른들을 아버지, 어머니로 마주해야 하는 사실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에게도 너무 괜찮은 시댁이 있지만, 심지어 시댁이 가까이 살지만 남편이 두 달 내내 집에 안 오더라도 "와주세요" 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게 들지는 않았다. 그냥 이만하면 견뎌야지 하면서 지내다 보니 시간은 잘 가더라.

 

그럼 친정은 어떤가. 여자 입장에서는 친정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많을텐데 또 이래저래 기대다 보면 미안해진다. 물론 시댁과 달리 친정은 '우리 집'이라는 생각이 있어 편하게 다가가는 경우도 많지만 친정 엄마도 쉬어야지라는 미안함이 마음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낳아서 내가 키워보자 라는 마음이 드는 게 수순이다.

 

 

육아의 외로움, 아이를 낳기 전 사회에서는 성과로 인정받던 그녀들

육아하는 엄마의 시간은 빠르지만 느리게 흐른다. (느리지만 빠르기도) 아이와 나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가도 나도 밖에 나가서 '성인'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막상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에게 소홀한 것도 그렇지만 친구 신경 쓰다가 이도 저도 아닌 하루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날도 있더라. 어른이랑 이야기하고 싶고,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할 때가 있을 정도로 육아는 '외로움'을 동반한다. 특히 아이가 100일 전후일 때 가장 그런 듯 하다. 그러나 외로움은 조금 더 기다리면 사라질 것이라며 응원을 보낸다. 아기가 곧 말을 하고 생각한 것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하면 외롭다는 감정이 조금씩 해소될테니. 엄마들 이야기 들어보면 (엄마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래서 아이가 두 돌쯤 됐을 때가 아이랑 제일 재미있게 놀 수 있을 때라 즐겁다고도 하더라.

 

 

 

 

회사 다니다가 집에서 육아를 맡게 된 그녀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요즘 엄마들 대부분이 20대 후반에서 30대, 많게는 40대까지 다양할텐데 우리들은 남녀가 평등하다는 교육을 받으며, 전 시대 통틀어 제일 많이 배운 여자들이다. 학교에서도 차별 없이 배우며, 회사에서는 남성들과 겨루어 성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고, 경력이라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둔 엄마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육아는 경력도 성과도 없다. 누가 아기 잘 키운다고 연봉을 올려주고, 대단하다고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있던 세상에서 밝게 빛나던 나, 집 안에서 애가 흘린 이유식을 쓸어 모으고 있는 나, 그 괴리감이 외로움을 더 크게 만들고 독박이라는 단어를 자꾸 되뇌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 사회 생활을 워낙 재미있게 하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게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하겠지만 그럴수록 아이에게 쏟는 '지금'이라는 시간이 정말 값지다는 사실을 자주 새겨보길. (셀프로 그러고 있는 중, 게다가 사회에서도 그닥 대단하지 않았다) 지금 아이를 향해 눈길 한 번 더 주는 것, 오늘 내 아이가 잘 크고 있는 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는 행복한 프로젝트가 육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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