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숨기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 슬픔 사용설명서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의 의식체계를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동시에 기쁨, 슬픔, 분노, 짜증,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의인화하는 기발함으로 신선하게 접근했다.

 

영화는 어린이가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주인공 라일리가 사춘기에 들어서기 직전의 청소년인 것처럼 어쩌면 영화는 어른과 어린이 어디쯤에서 성장을 잠시 멈추고 있는 어른들에게 꼭 필요한 영화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추상적 영역에 있는 것들을 현실감 있게 표현했기 때문에 '생각', '감정'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들은 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옆 좌석에 앉은 10살 정도 되는 듯한 꼬마"엄마는 재밌어?"를 여러 번 묻기도 하더라. 모든 장면에 필요 이상 밀도 있게 반응하는 엄마와 영화를 지루해 하는 아이 덕에 영화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 ...)

 

세트감독 다니엘 홀랜드는 감정들이 일하는 공간, 생각이 일어나는 공간 등을 시상하부, 뇌하수체, 세포들을 참고해 만들었단다. 심리학을 배우려다 보면 피하고 싶어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감각과 지각 파트인데 여기서는 뇌와 수용기관의 관계와 각 부분의 역할을 배운다. <인사이드 아웃>이 심리학 자문을 통해 깊이 있게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등장하는 무의식을 표현한 부분에서도 흥미를 느꼈다. 무의식을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는 공포스러운 것들을 가둬둔 공간으로 표현했다. 프로이트도 무의식의 영역에 대해서 의식에 머물기에는 너무 위협적이기 때문에 무의식으로 밀어둔 것이라 표현하기도 했으니 무척 적절하다. 이 곳은 라일리가 피하고 싶었던 것들의 창고다. 브로콜리, 삐에로, 진공청소기 같은 사연있는 물건이나 생물들이 있다.

 

본부라는 곳에서 일하는 다섯 감정들이 각자 잘 하는 것이 있는 것도 재미지다. 기쁨은 살아가는데 활력을 주고, 슬픔은 지쳤을 때 쉬게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기능을 한다. 까칠이는 분석하는 능력을 가졌고, 소심이는 위험을 피하는 기능을 한다. 분노는 힘을 발휘해 이기고, 성취하게 하기도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한다.

 

라일리의 가족들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엄마와 아빠의 감정 본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대장이 되는 (리더가 되는)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라일리의 경우는 기쁨이 대장 노릇을 하는 반면 엄마는 슬픔이, 아빠는 분노가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긍정과 부정으로 나눠 본다면 긍정적인 느낌에는 기쁨이,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에는 슬픔과 분노가 포함된다. 긍정과 부정 중간의 느낌으로 분류할 수 있는 단어는 까칠(짜증)과 소심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긍정과 부정 두가지로만 나눈다면 기쁨을 제외한 나머지 단어는 부정적 감정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의 감정 컨트롤 타워에서는 부정적 감정이라 여겨지는 슬픔과 분노가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문득 든 생각은 감정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으며 시기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건강한 정신을 위한 작은 실천이라는 사실이다. 슬픔과 분노는 나쁘지 않다. 영화는 우리가 평소 고정관념으로 갖고 있는 부정적 감정이 불필요하며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표현함으로 긍정적인 인격을 형성하며 성장하는 것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도 여러번 강조하지만 감정이 적절하게 발휘될 때의 순기능이 있어야 하루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영화에서 기쁨은 슬픔에게 '넌 좀 가만히 있어라'는 식으로 대한다. 요즘은 20년 전, 30년 전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도 했다. 그런데 역으로 부정적 감정들을 제 때 표현하지 못한 이유로 감정이 고장나버린 사람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보복운전이나 비인격적인 갑질논란에 대한 이슈는 이제 일상이다. 여전히 무조건 웃어야하고, 없어도 있는 척하고, 참아야 하는 사회분위기도 그렇지만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사회 안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 수용적이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부정적인 감정 앞에서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가만히' 있을 것을 권한다.

 

라일리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직면하게 되는 계기로 기억이 단 하나의 감정만을 갖는 단일화된 형태가 아닌 무지개 빛으로 남은 것처럼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계기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상대방의 감정은 물론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기쁨+슬픔, 기쁨+소심, 슬픔+짜증으로 알록달록한 기억과 핵심기억을 갖게된다.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한 한국의 문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슬픔의 역할을 통해 우리가 피하고 싶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말해준다. 슬플 때는 슬퍼할 것, 눈물을 흘리는 과정을 통해 위로할 것, 그리고 슬퍼하는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다시 채워 볼 것. 슬픔이 무기력한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상태를 통해 충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릴적 엄마는 나를 혼내면서 '뚝!', '울지마!' 했다. 아니 혼나고 있어서 무섭고 뭔가 서러운데 어떻게 뚝 그칠까. 대답을 하면 말대꾸한다 뭐라하고 가만히 있으면 대답하라고 했다.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세대라면 누구나 있을 법한 일이다. 기승전체벌의 엄격함 속에 성인이 되고나서 20대를 돌아보니 감정 컨트롤 타워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감정은 분노였다. 분노라는 감정으로 성취를 하고, 해로운 것들을 미리 방어하며 지냈다. 지금은 제법 건강해져서 적절한 감정표현을 하는 편이다. 분노 외에 다른 기쁨, 슬픔, 짜증, 소심이들도 일하게 됐다. 여전히 분노가 대장이긴 하지만. 

 

남편에게 대장 감정이 누구냐 물었더니 까칠이란다. 어쩐지 남편은 마음에 안드는 게 있으면 대답하기를 늦추고 싫다는 표현에 있어서도 거침이 없는 편. 사람에 대해 분석하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우리 부부의 대장 감정이 비록 분노와 까칠이긴 하지만 태어날 딸의 부정적인 감정을 나쁜 것이라 여기지 않고 수용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길 기대한다. 엄마, 아빠가 버럭이랑 까칠이라 조금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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