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알바의 필담, 08. 아줌마 추천 알바 유치원 차량보조 아르바이트
- 어느 알바의 필담
- 2014. 4. 3. 09:57
네이버 웹툰을 즐겨보는데, 만화를 다 보고나서 베스트 댓글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베스트 댓글의 조건은 99%의 타이밍과 1%의 드립력이란다. 지난 3월 어쩌다보니 새로운 알바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좋은 알바를 구하는 일은 네이버 웹툰 감상 후 베댓(베스트 댓글)이 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99%의 타이밍(순발력)과 1%의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구인공고 사이트에 괜찮은 아르바이트가 올라오는 순간 전혀 망설이지 않으면서 이력서를 딱! 끝" 요즘도 개콘에 깐죽거리 잔혹사가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시급 대비 일이 재미있거나 힘들지 않거나 등의 요건을 갖춘 아르바이트는 재빨리 사라지기 때문.
<어느 알바의 필담>이 이번 회로 8회가 되었다. 프롤로그를 포함하면 아홉 번째 글이다. 필자는 아르바이트와 관련한 유입 검색어로 아무 이력없는 자의 고민, 다른 일을하고 싶어하는 자의 고민이 절절한 검색어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도 아르바이트에 대한 방법론적 접근이 담긴 글을 써보려다가 글 쓰는 즐거움을 조금 누려보고자 조금은 가볍게 아줌마들에게 추천하는 추천알바 편이자 요즘 몸담고 있어 신선한 아르바이트 후기로 준비해 보았다.
유치원 통학버스 사고의 증가로 2013년 부터 유치원 차량신고, 운전자 교육 의무화를 시작으로 이후 도색, 표시등, 보조발판 등 안전기준을 갖춘 어린이 통학에 이용되는 모든 차량에 대한 신고와 보호자 동승이 의무화 되었다고 한다. 국회에서 도로교통법 개정안으로 통과시킨 사안이다. 아래 이와 관련하여 내용이 제법 튼실하게 들어간 기사를 첨부한다.
이런 이유로 유치원 차량도우미, 유치원 차량보조 등의 단어로 검색을 해 보면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필자의 경우 아르바이트 천국이나 알바몬을 쉭쉭 둘러보다가 있길래 지원해서 하게 된 일인데, 아줌마들이 자주가는 카페나 사이트에서는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 차원에서 일자리를 소개해주고 그러기도 하더라.
아줌마들의 계급과 서열, 무리의 위계질서 그러고보니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동안 지내보니 아줌마들에게 딱이다. 일을 하러 가보니 1호차 아줌마, 2호차 아줌마, 3호차, 5호차, 8호차 아줌마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첫 날은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교육을 받으러 간 날이라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차를 타고 한 번 돌아보는 일이 주 업무였다. 요즘 추세를 살펴보면 유치원 등하원 차량도우미는 보통 9시 부터 4시까지 일을 하는데 8시 30분 쯤 출근해 차를 타고 아이들을 아침에 등원 시킨 뒤, 9시 30분 이후에는 간식이나 점심식사, 청소 등의 자잘한 일들을 맡아 하고, 2시 부터 4시까지는 다시 하원차량에 탑승해 하원을 돕는 보통은 그런 스케줄로 하루가 계획된다.
그런데 다니게 된 유치원은 영어학원으로 오전에는 영어 유치원, 오후에는 초등부의 영어학원이 결합된 형태의 원이다. 이전에는 위와 같은 형태로 많은 아줌마들을 고용해서 운영하고 있었으나 운행해야 할 차량은 많고 비용 대비 효율이 별로였는지 오전에 잠깐 시간제로 쓰고, 오후에 따로 사람을 뽑아서 혹은 오전에 한 사람이 다시 와서 일하는 시간제로 바꾸는 그 시점이었다. 그 시점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해서 새로 뽑는 과정에 내가 들어간 것. 첫 날이고, 아무것도 모르니 눈치를 볼 수 밖에.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40대 초중반에서 많게는 50대 후반까지 나와는 무려 20살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연륜이 있으신 분들이었다지.
유치원 차량 도우미를 도우미, 혹은 아줌마라고 부르기 애매하니 여기는 영어이름을 하나씩 지어줘서 앤 선생님, 베로니카 선생님 등의 선생님 영어이름을 하나씩 만들어 친근하게 불러준다. 아줌마 무리에 낀 첫 날은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바뀌는 과도기의 바로 그 날로 차량도우미 선생님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는데, 대장인 듯 해보이는 아줌마와 대장과 친해보이는 아줌마, 그리고 대장과 맞서는 아줌마들의 "청소를 내가 더 많이했다" 배틀전인 것으로 보였다. 오후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어 월수금은 1시 30분 부터 4시 45분, 화목은 2시 부터 4시 30분까지 일하게 된 나와는 관련없는 틈바구니라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며 앉아있다가 갑작스런 외모칭찬(선하게 생겼다 등의 인상과 관련된)을 듣고 급 귀가 했다는 이야기.
차량보조 아르바이트의 실제 실제로 일을 해보니 재정감축으로 오전, 오후 사람을 따로 쓰거나 유치원 안에서 중간시간에 따로 청소할 사람은 쓰지 않다보니 이런 무리의 등살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그닥 없었고 차타고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챙기다 보면 귀가할 시간이 된다. 필자의 경우 실제 근무시간은 3시간 기준으로 하루에 2시간은 차를타고 돌며 (화목은 2시간 30분 중 1시간 30분만 일해서 더 꿀) 등하원을 시키고 나머지 1시간은 휴식시간으로 자유롭게 산책을 하거나 개인용무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 나름 꿀. 운 좋게 구하게 된 차량보조 꿀 알바는 월급제로 다니고 있는 곳은 한 달에 40~50만원을 지급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한 국경일은 휴무다. 또한 유치원 및 학원에 여름, 겨울 방학이 있어 여름 1주일, 겨울 1주일 휴가가 있고 급여는 그대로 지급된다. 완전 꿀.
또한 알바 시작 전에 지각하지 않고, 운전기사 분과 협업관계를 잘 유지하면 크게 간섭할 사람이 없는 것도 장점이다. 단점이 있다면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차를 타야 하는 일이니만큼 이 때는 꿀 알바가 헬 알바가 될 수 있다는 점. 난처한 일화는 동네에서 제법 유명한 영어학원이라 외국인 아이들도 종종 오는데, 매일 같이 하원을 도와줘야 하는 올해 4살인 인도인 어린이를 처음 만난 날 스스로의 영어실력의 한계를 실감하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쩔쩔맸다는 그런 이야기. 요즘은 적응이 되서 그 아이도 아무 말이나 하고, 필자도 아무 말이나 한다는 그런 이야기. 처음에는 어린이의 말이라 문법이 전혀 없고, 기승전결도 없고, 그렇게 문법이 없는 와중에 잘 모르는 어려운 단어는 또 어쩜 그렇게 아는지 갑자기 그런 단어를 말할 때면 그나마 된다고 느끼던 리스닝은 한 없이 작아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래도 영어 울렁증이 조금은 사라지게 된 좋은 효과가 있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본다.
똥과 방구 엉덩이를 좋아하는 동심의 세계 아르바이트의 꽃은 시급이다. 그런데 아무리 시급이 높아도 일이 재미가 없으면 한 달 다니기가 어려운 법. 그런데, 이제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차량보조 아르바이트에 대해 생각해보니 제법 재미지다. 하루 중에 3시간 정도로 할애하는 시간이 짧은 것도 한 몫하지만 아이들의 의미심장한 질문과 세상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우주의 신비에 대한 호기심, 벌레에 대한 애정은 물론 그것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하는 시간들로 근무시간이 채워지다 보니 두 세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이들은 언제나 뛰고 시끄럽다. 게다가 엉덩이와 똥을 좋아하며 방구라는 단어에는 웃고 똥이라는 단어에는 환호한다. 다니는 학원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만나봤는데, 적어도 2학년 까지는 똥과 방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름의 관찰을 통해 깨닫게 된다. 아이들의 눈을 통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고 벌레의 소중함이나 어릴적 딱지치기의 기쁨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른 차량에 탑승하시는 어느 분과 이야기를 해보니, 집에 있으면 남편도 회사가서 종일 안들어오고, 이제 애들도 다 커서 (대학생) 매일 같이 열 한시, 열 두시에 들어오는데 할 일이 없더라. 집에 그냥 앉아 있으니 친구들이랑 놀러다니느라 돈만 더 쓰고 맛있는 것만 사먹어서 살만 더 찌더라 하신다. 그렇다. 나는 생계형 아르바이트이긴 하지만 생계형이 아닌 이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일상이 무료하고 답답할 때, 권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사람이 와글와글 하고,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느라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기도 하는 그런 일이라 한 번쯤 해볼만 한 일이다.
글을 마치며 아이들의 질문과 이야기 베스트, 순위 NO
1. 이렇게 생긴 판에 검은 돌이랑 하얀 돌을 이렇게 놓아요. (바둑)
2. 태양은 이글이글 타고 있어요. 아냐 ! 태양은 돌이야. 다른 우주도 있어요? 엄청 다 타버려.
(우주와 태양계, 지구에 대해서)
3. 나는 까마귀 소리를 잘 내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까악 까악 ~
4. 선생님 남편은 남자예요? 여자예요?
5. 나는 일등 할거야 ! 1등 !
6. 제가 양보할게요. 저는 느리게 가는게 좋아요. 거북이 처럼 느릿느릿 (다른 친구에게 양보를 권했을 때)
7. 선생님, 무덤은 왜 만드는거예요? (죽음에 대하여)
엄마에게 물어봤어?
물어봤는데, 엄마가 모른다고 했어요.
(웃음) 무덤은 그 사람이 죽으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그 사람을 기억하고 싶어서 만드는거야.
8. 제 동생은 항상 제 머리를 손으로 당기고 나를 괴롭혀요. 그래도 저는 동생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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