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코와 리타, 음악을 위한 영화 (라틴재즈 그리고 해피엔딩)

 

<치코와 리타> 덕분이다. 덕분에 라틴재즈라는 것도 듣고,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라는 곳에 대해서도 알게되었다. 영화는 2010년에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개봉했다. '개봉했을 때 봤다면...'이라는 아쉬움이 여운으로 오래남을만큼 수작이다. 개봉했을 때 봤다면 좋았을걸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 하나는 큰 화면에 대한 집착이요, 다른 하나는 소리에 대한 욕심이다.

 

시각은 스페인의 예술가 하비에르 마리스칼이, 청각은 쿠바 출신의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가 담당했다. 백인이 만든 흑인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음악)을 차지하는 라틴재즈 곡들을 '베보 발데스'가 직접 작곡했다니 영화를 보고난 후 까칠하게 어딘가 흠을 잡아볼까 했던 생각은 당연 사라졌다. 영화는 음악에 조예가 없는 이에게 '나의 조예없음'이 영화감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할 정도로 훌륭하다. 음악을 위한 영화다.

 

1 영화는 할아버지가 된 치코가 1948년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그가 회상한 1948년 쿠바의 하바나는 화려하고 열정적인데다가 낭만적이다. <치코와 리타>는 1940~50년대 쿠바에서 있을 법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천재 피아니스트 치코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리타를 사랑하게 되고, 연인 사이에 있을 법한 오해가 되풀이 되지만 결국 둘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는 이야기. 그들의 사랑이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 되기까지는 6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각자의 아름다운 시절을 모두 보내고, 소비했다. 그리고 서로의 힘든 시절, 만남은 모두 소모전으로 보낸 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 만난 그들이 측은하게 느껴지는 건 나 뿐인가 싶다. 진정한 예술을 위해 사랑이 소모되어야 한다면, 글세.

 

더욱이 영화는 음악적 매력에 치중한 탓인지 치코와 리타의 사랑은 데이트 없는 사랑, 오해 후 그 오해를 풀고 서로의 잘못을 이야기할만한 대화는 없는 만남의 연속이다. 그 정도는 알아서 상상하라는 감독과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영화인지 알 길은 없다. 치코와 리타의 사랑은 러닝타임 내내 기승전침실의 구도로 이어진다. 그렇게 오해와 침실이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마지막은 서로에 대한 신뢰나 애착을 나타낼만한 상징이나 징표하나 없이 꼬박 47년을 기다린다. 영화가 무척 매력적이긴 하지만, 아리송하다. 47년 기다린 그녀가 하는 말은 

 

"47년을 기다렸어요, 당신이 이 문을 두드려주기를..."

 

이것이 바로 예술로의 승화, 혹은 예술과 사랑이라면 많이 좌절할테다. 그래서 필자는 이 영화를 음악을 위한 영화라고 부연설명을 할 수 밖에 없다. 좋은 음악을 듣기위해 이야기가 더해진듯한 느낌적인 느낌.  

 

 

2 남미는 우리나라에서 닿기 힘든 거리만큼이나 신비하다는 느낌을 주는 땅이다. 그들의 역사는 유구하나, 기록은 무척 짧다. 쿠바의 역사를 찾아보니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지배자의 시선으로 기록된 역사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더라.

 

영화는 역사를 늘어놓지 않고 음악과 사랑의 배경으로 적절하게 활용했다. 1950년대 일어난 쿠바혁명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당연시되었던 흑인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그러하다. <치코와 리타>는 치코와 리타의 연애사 외에 다른 부분들은 모두 적절하다는 것이 약점이라면 약점. 이야기는 통속적이라는 평이 허다하지만 이런 저런 것들 따져볼 시간 없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흥겨워 할 수 있는 영화다. 아무래도 음악 덕분이다.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일러스트는 굵고 진한 선, 굵고 흐린선, 가늘고 진한 선, 가늘고 흐린선으로 경계를 정확하게 구분 짓고,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경계를 흐릿하게도 하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정확한 경계선을 가진 그림이 얼마나 사실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아주 매력만점. (무엇보다 건축물에 대한 표현이 매우 짜릿하고 쫄깃하다, 따라 그려보고 싶을 정도) 

 

 

+ 덧: 살사, 맘보, 차차차가 모두 쿠바음악을 뿌리로 두고 발전했다니, 마음은 이미 쿠바. 어릴적 넌 이노래를 모른다며 엄마가 뜬금없이 흥얼거리던 노래, 베사메 무초가 이렇게 멋진 노래인줄 몰랐다.  

 

 

 

 

 

---

치코와 리타 (2012)

Chico & Rita 

7.7

감독

하비에르 마리스칼, 페르난도 트루에바, 토노 에란도

출연

에만 소르 오냐, 리마나 메네세스, 마리오 구에라, 에스트렐라 모렌테

정보

애니메이션, 로맨스/멜로 | 스페인, 영국 | 93 분 | 2012-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