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동물원, 시선(프레임)과 현실 그리고 연애

 

 

사랑을 꿈꾸기는 하지만 사랑을 이루는 일이 무탈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쉽지 않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은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사랑을 설명하지만, 실제 사랑은 꼭 내가 생각한 것처럼은 아니라는 걸 소박하게 새겨주는 영화다.

 

1998년, 영화가 개봉했을 때 봤더라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예쁜 영화다. 나는 너무 어렸고 그 때 봤더라면 영화가 지루해서 끝까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미술관 옆 동물원, 춘희와 철수

영화 속 춘희(심은하 분)에게는 영화감독 이정향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춘희는 나를 모델로 했다"는 감독의 인터뷰는 누구나 마음속에서 주인공이기를 소망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 <미술관 옆 동물원>은 평소 알던 <집으로> 처럼 따뜻했다.   

 

영화는 과천에 나란히 있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대공원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영화 속 미술관 쪽으로 가는 길과 동물원 쪽으로 가는 길이 만나 다시 하나의 길로 만나는 그 지점은 무척 신선했다. 분명 본 일이 있을텐데, 막상 영화에서 보니 저렇게 절묘한 길이 원래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란히 있지만 서로 다른 것에 대해 그림 그리듯 묘사한다. 영화 속에 철수(이성재 분)와 춘희(심은하 분)가 그렇고, 미술관 옆 동물원이 그렇다. 춘희의 시나리오 속에 등장하는 인공(안성기 분)과 다혜(송선미)도 그러하다.

 

결혼식장에서 웨딩촬영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며 지내는 춘희네 집에 철수가 벌컥 찾아오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철수는 춘희의 집을 예전 여자친구 다혜의 집으로 착각하고 찾아 오게된다. 영화는 막무가내로 다혜가 마음을 돌이킬 때까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철수를 쫓아내지 못하는 춘희의 약한 마음 덕분에 순조롭게 전개된다. 춘희는 시나리오 공모 중이었고, 한 손가락 타법을 맹렬히 구사하며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었다. 자연스럽게 철수는 그 일을 돕게 되고 시나리오를 쓰는 일은 서로의 내면을 알게되는 연애편지와 같은 역할을 하게된다. 시나리오 마감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갖게된 두사람이 친해지다 못해 영화 마지막에는 라라라하며 잘되는 예상 가능한 해피엔딩은 연애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달달한 대리만족이 될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뻔한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뻔한가 싶다가도 영화가 워낙 정직해서 가끔씩 번져오는 옛정서에 나도 모르게 오글오글 하는 것만 빼면 괜찮다.  

 

시선, 그리고 사랑의 방식

영화는 창틀을 통과해 보여주는 춘희의 집 내부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넓은 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 공간을 나누는 가벽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는 부분이나 주방과 거실을 나누는 부분의 코너를 돌아서 볼 때 다르게 보이는 무대적 요소를 더해 춘희의 집을 프레임이라는 요소로 나누어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화면에 담았다.

 

춘희와 철수 두 남녀는 모두 짝사랑 중인데, 짝사랑은 일방적인 시선으로 나의 시선 속에 변하지 않는 상대를 담는 방식이다. 가끔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상상에 가까운 이것은 변함없는 상대를 소유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와 나의 거리를 좁히기는 어려운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다혜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철수와 짝사랑하는 인공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못한 채 얼쩡거리고만 있는 춘희의 모습은 두 사람이 쓰는 시나리오에 그대로 담긴다. 철수가 춘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춘희가 철수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사랑에 대한 생각이 영화 속에 담긴 영화로 전개된다. 춘희와 철수의 엉뚱한 인연과 담백한 연애담을 보는 즐거움은 물론 연인과의 관계, 사랑에 대한 철학을 두 사람이 써나가는 시나리오 <미술관 옆 동물원>을 통해 엿보는 재미도 한 몫한다.

 

짝사랑이 단순히 나의 시선 속에 상대를 가두고 혼자 상상하거나 생각하는 것이라면,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원하지 않는 대답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의 연속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틀은 사랑에 빠진 시선을 상징한다. 춘희의 시나리오 안에 등장하는 미술관에 걸린 수 많은 액자는 그녀가 바라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시선과 감정들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철수와 함께 앉아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창 틀 너머는 살아있는 대상과의 소통, 그녀가 원하지 않는 말이나 행동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나가는 과정이 현실에서의 사랑이라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춘희와 철수의 짝사랑은 모두 실패한다. 하지만 상상속 그, 그녀 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온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된 영화의 결말은 짝사랑 혹은 썸 타는 일에 중독되다 못해 이제는 지쳐버린 청춘남녀에게는 좋은 소식이 될 수 있겠다.

 

춘희는 "사랑이 처음부터 풍덩 빠지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버리는 것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철수는 "춘희야. 예쁜 양말, 새 구두, 새 옷. 그런 것보다 더 예쁜건 너 자신이야. 세수도 잘 안하고 이빨도 제대로 안 닦고, 음식 먹을 때 괴상한 소리를 내는 너. 그런 너를 알아 줄 사람이 있을거야. 힘내" 라고 말한다. 

 

그렇다. 예쁘지 않아도, 많이 먹어도, 잘 씻지 않아도 그런 당신을 알아봐 줄 사람이 있을것이니, 힘내자.

 

아, 춘희가 심은하였다고? 아 (...) 그래, 예쁘긴 했지.

 

춘희(심은하 분)와 같은 외면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반드시 무언가는 있을 것이니, <미술관 옆 동물원>을 보면서 천천히 내면의 빛나는 무엇을 탐구해 보는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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