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김봉두, 아이들에게 배우자

 

돌아왔다. 블로그를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세월호가 침몰했었고 그렇게 50일이 지났다. 어제는 2014년 6월 4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던 어른들 43.2는 투표하지 않았다. 투표로 심판을 해야한다는 여론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의 권리도 행사할줄 모르는 어른들의 '미안하다'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결과다. 이마저도 16년만에 최고란다. (세월호가 투표율을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그래서 소개한다. 어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선생 김봉두>다.

 

필자에게 있어 촌지란 줘 본 일도 받아본 일도 없는 어떤 것이다. 90년대 초등학교 내부에서 학부모와 선생 사이 돈 봉투가 오가는 일이 그다지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걸 이야기해야 할 운명이었는지 필자는 선생님과 돈 봉투를 연결지어야 하는 불상사에 엮인 적이 없다. 만났던 선생님 중 부담스런 답례를 요구한 분은 단 한 사람도 없었으며  가끔 어린 눈에 행실이나 성적에 따른 차별이 보이기는 했지만 어떤 이해되지 않는 이유로 차별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일은 없었다. 오히려 돈이 한참 없었던 시절에는 부모님을 따로 불러 합리적으로 국가나 학교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좋은 선생님도 계셨다.

 

다만, 문제는 옆 반 선생님 혹은 옆 집 친구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어릴적에는 보통 아줌마들이 모여 이야기할 때 옆에서 안 듣는 척 듣기 마련인데, 어느 아이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 아이네 집은 형편이 좋지 못했다. 좋지 못한 형편에 맞벌이를 하는데 아이 담임은 자꾸 만나뵙고 싶다고 했다. 아이 이야기를 들으면 은근히 아이가 미움을 받는 것이 선생이 돈을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없는 형편에 5만원을 마련했다. 90년대에 5만원이면 큰 돈이었다. 지금도 결코 작은돈이 아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겠지.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어렵게 담임을 만났고 별 중요한 이야기가 오가지도 않은 끝에 봉투를 내밀고 돌아왔다. 그런데 결과는 처참했다. 다음날 아침, 반 아이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담임은 아이를 큰 소리로 불렀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누구야, 이거 어머니 반찬 사드시라고 해." 선생이 아이에게 건네 준 것은 어제 아이 어머니가 어렵게 마련해 온 봉투다. 아이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아이를 불러 본인이 달라고 떼쓰던 봉투를 다시 돌려줬다. 아이는 그렇게 다시 부족하고 답답한 사람이 되버렸다.   

 

<선생 김봉두>를 보고 일명 '촌지'라고 하는 것에 관심이 생겨 네이버에 '촌지'라고 썼더니 2014년에도 여전했다. 기본은 우선 30만원부터 시작하고 학년별로 '촌지'라는 것의 가격도 다른가보다.

 

영화는 봉투로 시작해 봉투로 마무리된다. 오죽하면 선생 이름도 봉두다. 줄거리의 큰 줄기는 봉두라는 인물이 맡는다. 그리고 가지들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작은 분교 아이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영화다. 기존의 교육영화와는 다른 계몽영화다. 선생님과 학생이 등장하는 영화의 대부분은 '학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선생님'이 등장하지만, <선생 김봉두>에서 문제는 선생이다. 김봉두(차승원 분)는 때 묻은 도시어른을 대표한다. 약하게나마 그의 상처받은 어린시절을 통해서, 그리고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그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영화 안에서 이유를 더해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영화는 실제 인구감소 등의 이유로 폐교된 예미초등학교 연포분교에서 촬영되었고, 영화 안에서는 '산내분교'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함께한다. 이제는 숲이 우거지고 잡초가 뒤덮여버린 교정이 무척 쓸쓸해 보인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양희은의 <내 어린 날의 학교>가 함께 흐른다. 그리고 폐교된 학교, 누군가의 추억이 깃든 모습을 담아 하나씩 보여준다. 영화는 117분(약 2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한결같이 감동적이기 때문에 조금은 지루해지기도 한다. 그 지루함까지도 여운으로 남기는 역할을 한 것이 양희은의 노래, 폐교된 학교의 쓸쓸한 모습이 함께 흐르는 엔딩크래딧이었다.

 

다시 찾은 블로그에 무언가를 쓰고 싶어 찾게 된 영화, <선생 김봉두>는 국가적 재난 사건이 일어난 이후 보게되니 김봉두의 모습이 대한민국의 실제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있었다. 김봉두가 산골 아이들 덕분에 순수함을 되찾은 것처럼 어른들도 순수함과 열정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덧,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대표영화로 <죽은 시인의 사회>를 꼽을 수 있다. 2011년 많은 칭찬을 받다가 최근 우리나라에서 다시 개봉한 <디태치먼트>도 추천한다. <디태치먼트>는 시간을 내서 영화관에 가서 보려했으나 실패했고, <죽은 시인의 사회>는 제법 오래전에 적은 리뷰가 있어 링크를 걸어둔다.

 

2012/10/05  [소울푸드: 리뷰/오늘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그래도 현재를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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