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관람이 아니라 체험이다

 

"어떤 영화는 관람이 아니라 체험된다. 바로 <그래비티>다. 경이롭다" 이동진 평론가의 평이다.

 

10월 17일 개봉한 <그래비티> 개봉 즉시 3D로 예매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한 달 느린 리뷰로 이렇게 찾아왔다. 지구인이면서 한국인의 생활이란 모두들 아시다시피 영화에 대한 진득한 고민을 할 시간이 충분치 못한 것이 현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우주에서의 기억을 잊었다. 덕분에 중력의 고마움도 잊었다. 그러나 간만에 찾아온 주말, 경이로움의 정의를 체험하도록 이끌어준 <그래비티>와 함께 무중력의 기억도 다시 떠올린다.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I. Kahn 1901.2.20~1974.3.17)은 "이제부터 50년 후에 건축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내다볼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 하나가 생각나는군요. 저는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에게서 우주선 설계를 도와달라고 부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FBI에게서 이 일을 하도록 허가를 받았습니다. 저는 제 책임 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보았지만, 아무튼 우주선에 대해 말할 수는 있었습니다. 아주 기다란 테이블에서 과학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아주 다양했습니다. 그 중에는 파이프 담배를 피는 사람도 있었고 백발이 섞인 턱수염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왠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처럼 특이하게 보였습니다. 한 사람은 테이블 위에서 그림을 그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칸 선생, 우리는 우주선이 지금부터 50년 후에 어떻게 보일지 당신께 보여주고 싶은데요." 그가 그린 그림은 아주 그럴싸하고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우주에 떠 있었고 아주 근사하고 복잡하게 생긴 도구가 우주에 떠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보았더라면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림 한 장을 보여주면서 "이것이야말로 우주선이 이제부터 50년 후에 어떻게 보일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점으로 미루어보아, 그 남자는 여러분이 전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즉시 대답했지요. "아마 그렇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의자를 테이블 쪽으로 당겨 앉으면서 "그렇다면 선생님은 그러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것은 간단하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50년 후에 어떤 것이 어떻게 보일지를 안다면, 지금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50년 후에 그것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은 앞으로의 일이므로 당신은 알 수가 없다고요.

(루이스 칸: 학생들과의 대화 본문 중에서)

 

아무튼 우주선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축가, 하지만 앞으로 50년 후의 우주선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50년 후에 어떻게 보일지 아는 것은 지금 우주선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내년이면 건축가 '루이스 칸'이 타계한지 40년이 되지만 그가 살아있을 때 모르던 건축의 50년 후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건축은 여전히 꼬르뷔제와 미스의 영향력 아래 지어지고 보존되거나 부수어진다. 말하자면 아직까지 그들을 뛰어넘은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

 

 

반면 <그래비티>에서 말하고 있는 우주는 다르다. "50년 후에 어떤 것이 어떻게 보일지를 안다면, 지금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우주에 갈 수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가 우주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비티>가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단 두명의 배우, '우주'라는 거대한 한 공간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는 삶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죽음에 대한 동경 비슷한 감정을 뒤섞어 무중력 속에 빙글빙글 돌게 한다.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분)도 돌고, 나도 돌고, 다들 돌았다. 

 

영화는 지구에서의 삶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던 어느 여자의 삶에 대한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그 모습에 대면하는 각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내면의 두 마음을 경험한다. 차라리 죽어야 하나, 이제 죽나 싶을 때 다시 정신을 차리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지글지글 다시 타오르는 삶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게 아마 '두 마음'일 것이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와 그래도 살아보자라는 마음. 

 

<그래비티>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전작들과 같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왜'라는 물음이 들어있고 SF지만 다분히 현실적이다. 영화 <그래비티> 안에서 주인공의 시선은 지구를 향해있다. 알지도 못하는 우주가 아니라 발 붙일 땅, 지구를 향한 시선은 삶에 대한 애착과 사명감이다. 우주라는 형체도 알기 힘든 거대 공간에서 지구를 향해 가는 과정 중 끊임없이 '태어나기'를 반복하는 스톤 박사가 여성인 이유도 결국은 생명의 탄생에 대한 관념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그의 동료 맷(조지 클루니 분)과 끈 하나에 이어서 가는 모습(탯줄), 소유즈 안(둥근공간, 모태)으로 가까스로 들어와 우주복을 탈의하는 스톤 박사의 모습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을 떠올리게 한다.

 

'건축학개론' 시간 스무살, 여전히 진하게 기억한다. 건축을 처음 알던 그 때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왜 모든 공간을 네모나게 만들까요? 우리가 사실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공간은 각진 부분이 없는 공간일텐데. 태어나기 전 어머니 뱃속에서 처럼요."

 

어쨌든, 그녀는 다시 태어난다. 불타는 소유즈에서의 불 안에서 해방되었고, 입구를 힘차게 열었더니 마구 밀려들어오는 물에 엄청난 수압의 충격을 견뎌내고 태어난다. 우주에서의 유영이 아닌, 지구에 발을 딛고 서게 되면서.

 

 


그래비티 (2013)

Gravity 
8.1
감독
알폰소 쿠아론
출연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에드 해리스, 오르토 이그나티우센, 폴 샤마
정보
SF, 드라마 | 미국 | 90 분 | 20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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