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상처 입은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

 

8살짜리 애가 실제로 성폭행을 당하면 자기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인지할 것 같나, 그냥 난폭한 폭행을 당했다고 인지할 것 같나. 후자다. 그걸 찍다가 알았다. 그걸 증명하는 대사가 뭐냐면 회복실에서 처음 소원이가 아빠 보고 하는 말이야. "아빠, 회사는?" 자기가 성폭행 당한 줄 알면 "아빠, 나 죽을 것 같아. 나 어떻게 해야돼?"가 먼저 나왔겠지.

 

- 씨네 21 인터뷰, 이준익 감독 

 

영화는 충격으로 시작해 감동으로 마무리 된다. 이미 잘 알려진 사건을 '고발'해야 할 대상으로 알리지 않았다. 함께 '공감'해야 할 일로 분노가 아닌 동행으로 표현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사건 이후 5년, 지나간 상처를 잘못 들쑤셔 놓아 다시 한 번 또 다른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염려되는 장면은 다행히 없었다.

 

영화 중, 친구 광식이(김상호 분) 이건 사건이 아니라 사고다라며 위로한다. "니 새끼가 당해도 사고일거 같나?"라는 임동훈(설경구 분)의 고함이 가슴을 마구 때린다. 영화 <소원>은 사건에 대한 직설이 아닌 사람 마음에 대한 세밀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준익 감독은 아역배우 이레(임소원 역)의 어머니가 원하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빼기도 하고, 영화 진흥위원회가 대한소아청소년 정신의학회와 함께 아역배우들을 대상으로 배역 후유증 예방 및 치유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촬영 후 까지 관리했다.

 

<소원>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건 자체보다 치유의 과정을 보여줌으로 보는 이에게 감동과 함께 눈물 콧물을 함께 선사한다. 치유의 과정에서 소원이 만큼 힘들어하는 엄마 아빠를 비롯, 함께해주는 이웃들, 친구들을 따뜻하게 그려 "세상이 아직은 살만해"라고 이야기해주는 영화.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고 한다. 평소에 배변 주머니를 달고 다녀야 하는 나영이에게는 악취가 났다. 배변주머니가 가득 차면 성인 주먹 두개를 합쳐놓은 정도의 크기로 부풀기 때문에 나영이는 일부러 펑퍼짐한 옷을 입어야 했음은 물론 냄새가 신경쓰였기 때문에 자연 아이를 피하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그러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배변 주머니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부분을 잘 가려주던 담임 선생님이 있었고 여기저기서 도움을 주는 손길들도 많았다. 2010년 8월에는 배변주머니를 제거하는 수술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사고라 불릴 수 없는 "그 일"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 영화는 아이 뿐 아니라 "그 일"로 상처 받을 수 밖에 없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눈물을 참아야만 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오열하며 실신할 수 밖에 없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관객은 함께 울 수 밖에 없다. 아이는 사건으로 아버지가 옷에 묻은 대소변을 닦아주려하는 부분에서 아버지와 성폭행범을 동일시한다. 아버지가 남자로 일반화 되어버린 순간,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참함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가 하마터면 영원히 단절 될 뻔 했다. 하지만 아빠의 노력은 계속된다. 딸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높이로 충분히 내려와 '코코몽'이 된 아빠의 노력은 위대했다.

 

 

<소원>은 상처치유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렸기 때문에 '심리상담사'의 비중도 상당하다. 아동심리치료, 더군다나 성폭력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겪은 아이의 마음에 다가가는 상담사의 역할이 좋았다. 정숙 (김해숙 분), 그녀 또한 피해자다. 그러나  "상처 입은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라는 익명의 시인이 쓴 시처럼 그녀는 현명한 한 사람의 역할로 치료의 과정을 이끌어 갔다. 그녀는 내담자와 내담자 가족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상담자로 말을 해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보여준다.

 

아동심리치료는 상담 뿐만 아니라 놀이치료와 미술치료를 많은 부분 활용하기도 하는데 첫 만남에서 상담가의 재치란 "바로 이 정도로구나"라는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아이와 심리적인 유대를 먼저 가지려는 상담자는 소원이 옆에 놓인 '코코몽' 인형을 들고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라포(rapport)형성*, 소원이와의 친밀감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코코몽으로 소통의 시작을 이끈다. 상담 중에는 내담자의 말에서 질문할 것을 찾아 내담자가 그 말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작업들을 반복적으로 돕기도 한다.

 

그리고 소원은 상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왜 태어났을까'라는 말로 삶의 의미를 묻는다. 이렇게 내담자를 생각하게 하는 상담자의 역할이 영화에서는 무척 따뜻하게 다가온다.

 

* 라포(rapport): 상호간에 신뢰하며, 감정적으로 친근감을 느끼는 인간관계. 상담과 정신치료에서 치료적 관계형성에 핵심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험이 있다. 최근 연구들에서는 상담관계, 상담동맹, 혹은 작업동맹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출처:네이버 교육학 용어사전)

 

 

가장 외로운 사람이 가장 친절하고, 가장 슬픈 사람이 가장 밝게 웃는다.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소원이 동생이 태어나고 그 옆에 잠시 비춰지는 어느 시다. 소원이 가족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긴 시,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는 이 시의 구절처럼 재판의 마지막에 피해자를 명패로 가격하려던 아빠를 붙잡고 "집에 가자"라고 한 사람도 소원이었다.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

 

 


소원 (2013)

8.8
감독
이준익
출연
설경구, 엄지원, 이레, 김해숙, 김상호
정보
드라마 | 한국 | 123 분 | 2013-10-02

 

 

 

덧, 아직까지도 '나영이 사건'으로 불리고 있어 문제되고 있는 이 사건은 앞으로는 "조두순 사건"으로 올바로 불러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 기사들부터 천천히 보니 2009년에는 '나영이 사건'으로 불렸던 기사가 2011년에는 "조두순 사건"으로 정정되었음을 확인했다. 또한 사건과 관련된 기사, 사건 이후 나영이의 근황과 관련된 기사를 링크한다.

 

사건 관련기사

범인의 뻔뻔스러움 (한겨레 2009.09)

사건 이후 후원에 대해 (한겨레 2009.09)

조두순 사건 가석방 절대 불가 (한겨레 2009.09)

 

사건 이후 관련기사

사건 이후 나영이 배변주머니 제거수술 (SBS 2009.12)

조두순 사건, 나영이에게 인공항문 달아준 한석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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