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보낸 사람, 종교 혹은 인권

 

종교영화라고 오해가 많다. 그런데 오히려 영화는 종교가 아닌 인권에 무게를 실었다. 아니, 그런데 김진무 감독은 종교에 대한 메세지를 분명하게 실었다고도 한다. 상영관 분위기는 흡사 어느 교회의 단체 관람을 떠오르게 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삼삼오오 뭉쳐 찾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도 그럴것이 <신이 보낸 사람>은 개봉 전부터 영화주제와 소재가 가진 종교적인 색깔 때문에 신천지 영화라는 뜬금없는 기사거리가 오르내릴 정도였다. 신천지와 관련이 있다는 건 사실무근. 기사들의 분위기를 종합해 보니 신천지 집단이 영화개봉이 가져오는 효과에 편승해 신천지를 홍보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영화는 어둡고 건조하고 칙칙하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살얼음 땅을 감흥없이 잘 표현했다. 감독 김진무는 편향된 시선으로 표현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CTS(기독교 방송)를 통해 영화에 담고자한 종교적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말대로 <신이 보낸 사람>이 편향된 시선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갖게될 기독교라는 편향된 시선에 대한 걱정은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된다. 아주 불편한걸 보니 편향된 시선으로 만든 작품이 아닌것은 확실한 것 같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 (The Apostle : He was anointed by God)>의 제목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의 뜻을 가진 anointedApostle라는 명사가 눈에 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사도를 우리 말로 느낌이 바로 올 수 있도록 "신이 보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영문제목이 더욱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성경에서 기름부음을 받는 것의 의미는 엄청나다. 제사장, 선지자, 왕이 바로 이들이었다. 신에게 권위를 부여 받은 이들이 성경에서 모두 신의 성품을 닮은 삶을 사는가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신구약을 통틀어 흠 없이 살아간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려울 정도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던 그들도 인간의 한계, 연약함이 있었던 것처럼 영화 <신이 보낸 사람>도 '신' 이야기가 나오지만 신이 있어도 두려울 수 밖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줄기차게 보여준다. 영화는 그들의 믿음, 신앙이 인권을 지켜줄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마을사람들의 두려움, 혼자라도 살고싶은 이기심까지 믿음이라는 걸 갖고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믿음으로 다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전지전능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어떤 이는 끝까지 순교하고, 어떤 이는 '이제 예수를 믿지 않겠다'는 한마디로 목숨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줄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순교인데, 영화는 이런 환경과 여건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죽는 것이나 다름 없는 현실임을 투박한 영상으로 담아낸다. 그들의 죽음 앞에서 '그래서?'라는 물음표들을 남기면서.   

 

남한에서는 기독교인들이 개독인이라 불리며 비방받는 일들이 그럭저럭 있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는 것이 허용된다는 말이다. (특히 인터넷 댓글들은 더럽다 싶을 때도 더러 있다) 그만큼 비기독교인들이 기독인들의 언행일치가 안되는 부분, 전혀 기독교인으로서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부분들을 판단하고 살펴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또한 개독인이라 불리며 비방 받는 것이 두려운 이 때, 남쪽에서는 단지 비방 받는 것이 두려운 것 그 뿐이다. (남쪽에서는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는 것이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겪는 최고의 불편함이다) 북쪽에서는 신앙을 갖는다는 이유로 숱한 고문과 매질, 개나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런 북한의 실상에 대해 정면승부 한다. 그래서 불편하고 불안하다. 탈북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기승전결에서 대체 강은 언제 건너냐며 신경질이 나기도 한다. 정치범으로 몰리거나 탈북을 시도하다가 총살을 당한, 혹은 매질을 당하다가 죽은 시체들은 아무곳에나 버려진다. 그리고 시체들이 버려진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물건을 챙기는 소녀도 있고 소녀와 함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바보도 있다.

 

정면승부는 불편함을 더하고, 이 불편함은 결국 일부 사람들에게는 기독교, 혹은 신앙에 대한 메세지를 담은 내용이 반기독교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상당 부분에서 공감과 물음표를 번갈아가며 떠올리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나갈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에 대해 전혀 모르는 (혹은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던지는 메타포에서 반기독교적인 의미를 곱씹게 될 우려도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다.  

 

지하교회 성도들의 몰살, 그리고 그 상황에서 예수의 탈을 만들어 쓴 동네 바보(지용석 분)가 너희들을 용서하겠다며 분신을 한다. 마약중독자 철호(김인권 분)의 탈북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가 총살을 당하면서 그의 죽음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에서 지명한 '신이 보낸 사람'이 철호다. 그가 마약중독자였으며 결국 그 일로 사람들의 신임을 잃은 것과 비유되는 동네 바보의 처절한 죽음은 기독교가 참 별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거부감을 줄 수 있는 표현방식인 것 같아 찜찜하다. 내용 또한 영화가 던지는 정면승부라면 영화를 보고 난 뒤 남는것은 물음표 뿐, 영화의 의도가 애초에 북한과 지하교회, 그리고 인권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것 그 뿐이었다면 일단은 좋다. 꼭 답을 주는 것이 해답은 아닌 것처럼 뭔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면 그 또한 답일 수 있으니. 불편한 것, 찜찜한 것 때문에 생각하게 한다면 이 또한 훌륭한 한 수가 될 수 있다. 영화가 그런 것처럼 구태여 구구절절한 성경적인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이런 찜찜함 가운데, 처형장면에서 주철호는 "하나님은 우리를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죽기전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라고 한다. 보는 이에게 잠깐 생각의 전환을 줄 수 있는 장면이긴 하지만, 큰 메세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없지는 않다.   

 

묵직한 울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후에는 대다수의 관객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엔딩크레딧 뒤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묻는다. "남조선이 가나안 땅입네까?"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