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날아라
- 소울푸드: 리뷰/오늘은 영화
- 2011. 10. 21. 10:12
숨을 쉬고 있지만, 그 숨이 열정이 없는 숨이라면 빌리를 만나보길 바란다. 순수한 열정의 소유자, 빌리 엘리어트를 소개한다.
발레가 어때서 그래요?
발레가 어때서 그렇다. 남자는 풋볼이나 권투, 레슬링을 해야한다. 내가 잊고 지내던 유쾌하지 못한 과거를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오직 아버지의 바램으로 권투를 다니던 빌리는 스스로의 뜨거움에 이끌려 아버지 몰래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아버지와 형의 반대에 부딪힌다. '발레가 어때서 그래요?'라고 묻는 빌리 엘리어트(제이미 벨 분)는 1984년, 영국 북부 던햄 지역의 광산촌에 사는 11살이 된 꼬마다. 이 꼬마가 이렇게 외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했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보라. 비장한 표정의 우리 빌리. 우리 빌리는 귀요미 꼬마숙녀들 사이에서 유일한 청일점이다. 게다가 제법 귀여운 꼬마여자아이들 사이에 있으니, 필자의 눈에는 빌리가 미운오리 같아보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내 친구 빌리가 '발레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빌리 덕분에 정말 '그것'(그것이 무엇이든)을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마음으로 깨닫게 되는 110분이었다.
농담하니? 네 방 세놨다
본의 아니게 아들의 춤을 보게 된 아버지 재키 엘리어트(게리 루이스 분)는 "발레, 그게 남자가 할 짓이냐?"라는 물음에서 마음을 바꿔 "빌리의 재능을 살려주어야 한다."라는 의지를 갖게된다.
모성애보다 부성애가 더 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버지에게 느껴지는 사랑이 어머니에게서 느껴지는 사랑보다 강하지만 연약하고, 투박하지만 부드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재키 엘리어트의 자식사랑이 그랬다. 그는 그토록 외치던 강한 남자의 상징인 권투보다 아들이 열정을 가진 발레를 하는 것을 돕기로 결심한다. 당장 집안에 온기를 가져다 줄 땔감이 없어서 죽은 아내가 아끼던 피아노를 부수어 난로에 불을 지피면서도, 아내의 결혼 예물을 팔아 빌리의 오디션 비용을 마련하려 했다. 그리고 광부들의 연대 파업에서 이탈해 '배신자'소리를 들으면서도 오로지 아들 빌리의 오디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탄광으로 향했다.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 빌리네 아버지는 아들 엘리어트가 아빠 엘리어트에게 런던으로 떠나기 전 "힘들면 돌아와도 되죠?"라고 묻는 물음에 아주 흔쾌히 "농담하니? 네 방 벌써 세줬다."고 말하는 재치있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중요한건 네 움직임과 어떻게 표현하는가야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는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난 담임 선생님 덕분에 글을 쓰는 일에 엄청난 흥미를 갖게되었고, 선생님은 항상 최선을 다해 나를 이끌어주셨던 기억이 있다. 갑자기 인생회고를 하려는 게 아니지만, 꼬맹이 빌리를 보니 빌리랑 동갑이던 어린시절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에게 글의 멘토가 있었다면, 빌리에게는 춤의 멘토가 있었으니 윌킨슨 부인(줄리 월터스 분)이 바로 빌리의 인생을 이끌어 준 한 사람이다.
빌리의 눈에는 윌킨슨 부인이 권투도장을 빌려 발레교습을 하는 실패한 무용수로 비치지만, 사실 그녀는 그 정도 그릇이 아니었다.
빌리 엘리어트, 날아라
윌킨슨 부인의 빌리 엘리어트의 재능을 알아본 안목과 빌리의 재능을 확신한 아버지의 응원에 힘입어 빌리는 무사히 로열발레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심사위원이 묻는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모든 걸 잊게 되고, 그리고 사라져 버려요.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에요. 마치 몸 안에 불이라도 치솟는 느낌이에요. 전 그냥 한 마리의 나는 새가 되죠. 마치 전기처럼... 맞아요, 마치 전기처럼요." 라는 빌리의 대답. 모르겠어요... 라고 처음에 대답했을 때, 저렇게 말하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덜컥하고 들었다. 그런데 '모르겠어요' 라는 이 말의 줄임 뒤에 오는 단어, 글자, 말들 하나하나가 '혼신'을 다하는 게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만 같아 그 말들에 마음이 울렸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날았다. 날아올라 춤추었다. 발레학교에 입학이 결정되고, 빌리가 그의 가족들과(아버지, 형, 할머니) 작별하게 되는 장면 까지는 자세하게 묘사되지만 그 이후 빌리 엘리어트의 성장과정은 생략된다. 이 생략으로 인해 빌리의 날아오르는 마지막 모습은 매우 극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 부분을 아주 잠시만 보여주는 과감함으로 성장한 빌리 엘리어트의 비상을 더욱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빌리의 비상과 함께하는 음악은 1877년,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발레 음악 '백조의 호수'다. 저주의 굴레로 느껴지는 탄광촌의 어두운 삶에서 춤에대한 사랑으로 날아오른 빌리 엘리어트의 비상에 마음이 함께 춤추는 영화.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그것'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 확신이 필요한 당신에게 완전 추천한다.
|
반응형
'소울푸드: 리뷰 > 오늘은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바짝 메마른 당신에게 (17) | 2011.11.12 |
---|---|
글루미 썬데이, 존재의 이유를 묻다 (20) | 2011.10.28 |
웰컴 투 동막골, 예쁘다 (10) | 2011.10.15 |
아마데우스, 이 세상 모든 두번째를 위하여 (10) | 2011.10.10 |
투혼, 기백이 느껴지는 가족드라마 (10) | 2011.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