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법대로 합시다

리뷰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에 키보드에 두손을 얌전히 올려놓아 본다. 제법 긴 시간 블로그를 떠나 이리저리 분주했었다. 그리고 2012년 2월, 블로그로 다시 타오르는 열정을 기대하며 무언가를 적어야만 하는 이 시점에서 '부러진 화살' 이라니, 이를 어쩐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막힌 기를 뻥 뚫어주는 통쾌한 한마디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한 개인이 거대한 권력 앞에 맞설 수 있는 가장 큰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 재임용 탈락 사건 항소심에서 패소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조교수가 담당 재판장인 서울고등법원 박홍우 부장판사에게 '석궁테러'를 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1995년 대입 본고사 수학문제에서 오류를 발견한 김경호교수(안성기 분)는 이에 대한 대학의 부당한 처우에 맞선다. 교수지위 확인소송에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자 담당 판사를 찾아가 협박을 하던 중 사건이 발생, 교수가 쏜 화살에 맞아 상해를 입었다는 피해자 측과 화살을 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피의자의 법정 공방이 흥미진진하다.    
영화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화살을 쏜 것으로 여겨지는 피고측이 재판을 이끌어 간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는 검사, 재판에는 관심없이 떨어진 사법부의 권위에만 몰두하는 판사는 재판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법정의 공기를 주도 하는 것은 피고인석에 앉은 피의자 김경호(안성기 분)다.

영화의 소비자인 관객들은 '부러진 화살'에 몰입한다. 그리고 환호하고, 열광한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영화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불편한 진실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이 걱정에 한 몫을 더했다. 영화 '도가니'를 보고, 분노했던 지난 해 9월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근심은 기우에 불과했다.

꼬장꼬장 의뢰인과 모닝소주 마시는 변호사


관객은 환상의 콤비인 피고인 김경호(안성기 분), 변호사 박준(박원상 분)의 호흡으로 어쩐다 싶던 영화에 초반부의 난해함을 잊고, 영화 속으로 점차 몰입하게 된다. "법은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는 교수와 "법은 쓰레기다"라는 변호사, 꼬장꼬장 하다 못해 보는 사람 울화통 터지게 하는 교수와 아침에도 모닝소주로 상쾌함을 찾을 것 같은 그냥 동네 아저씨 같은 변호사의 조합은 '법정 실화극'이라는 장르의 버거움을 잊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여담이지만 법정에서 두 번째 연기를 펼치는 안성기 아저씨는 어려운 대사들을 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대사를 녹음해서 오며가며 들으면서 다니고, 손으로 받아써가며 외우고 대사에 충실, 또 충실 하셨다고 한다.

입 있는 자, 말하라


'부러진 화살'에 대한 의견은 하나로 모아지지는 않는다.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나, 유독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전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이와 같은 재판이 한국에서 있었다'고 말한다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100% 픽션이다라고 할 만큼의 어처구니 없는 재판과정이 이 영화에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부러진 화살'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회참여가 이루어질 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가 단순히 사법부의 모순에 정면 대응하는 이 남자를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아마도 법으로 살아야만 하는 세상에서 법대로 이끌어주지 않는 권력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에 포함되는 우리들이 갖고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부러진 화살
감독 정지영 (2011 / 한국)
출연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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