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소년과 호랑이 그리고 우주
- 소울푸드: 리뷰/오늘은 영화
- 2013. 2. 1. 00:13
동네 요가센터에서 환자 역할을 맡고 있는 수강생 윤모씨(27)는 사바사나 동작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호흡을 길게 들이쉬고 내쉬며 내 몸 구석구석을 손 끝, 발 끝, 머리 끝 까지 바라보라는 선생님의 설명은 우주를 체험하는 듯 하다.
1. 환자: 요가계에서는 굽히거나 펴는 동작을 하는 데 있어 일반인과 달리 커다란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짝다리나 오다리가 심각한 자를 환자라 칭한다.
2. 사바사나: 송장자세라 할 수 있겠다. 사바(sava)는 송장이라는 뜻, 아사나(asana) 자세라는 뜻.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로 완전한 휴식과 이완을 취한다.
요가와 꼭 닮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도 우주를 담았다. 영화는 나와 신을 알아가기 위한 삶의 동력으로 살아가는 소년 파이(본명: 피신몰리토 파텔, 16)의 표류기 227일을 담았다.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는 국내에서는 2004년, 번역 출간되었다. 필자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소설을 읽지 않아 영화를 보고 난 뒤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소설은 영화와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는데 소년 파이의 세계관을 묘사하는 부분이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한다. 영화가 전반부에 비중을 두어 소년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소설은 전체 400쪽 중 126쪽을 할애해 그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소설은 2002년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았다.
읽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 400쪽의 활자로 이루어진 끝없이 펼쳐진 상상의 세계를 영화화 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슈누 신의 입 속에 담긴 우주, 끝 없는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 있는 구명보트, 해파리 떼로 빛나는 밤바다, 미어캣이 사는 식인섬, 보트 안으로 날아드는 날치 떼의 모습은 영화로 느끼는 긴장감과 함께 몰입도를 상승시켜 준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 선택은 영상을 3D로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2009년 아바타가 개봉하기 9개월 전 이었으므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나 스탭들, 배우들 모두에게는 모험이었을 것이다. 이 모험 덕분에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물질로는 존재하지 않은 한 사람의 세계관을 입체감있고 깊이있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고, 더불어 소년의 모험을 실감나게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은 리안 감독이 영화를 위해 대만 타이중의 옛 수이난 공항을 영화 스튜디오로 개조해 깊에 3M에 물이 약 250만 리터가 들어가는 인공수조를 설치했다는 점. 여기에 12개의 송풍기 모터도 설치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영화는 실제 바다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영화의 대부분은 바다 위에서 벵골 호랑이라는 녀석과 함께한다. 이 녀석의 이름은 리차드 파커, 필자는 상영시간 내내 가슴 설레고, 두근두근 하고, 녀석이 공격해 오면 몸을 사리곤 했지만 사실 이 녀석은 털끝 표현 하나에만 15명의 아티스트들이 매달려 만들어 낸 초호화 3D 호랑이란다.
여러분은 맹수가 길들여지기를 내심 바라거나, 벵골 호랑이와 소년의 따뜻한 감동드라마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영화는 '공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영화는 집중하는 부분,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견해를 갖게 하는데 검색을 통해 시각을 가진 글들을 찾아 볼 수 있으니 궁금하다면 참고해 보자. 시각의 다양성이란 <라이프 오브 파이>의 모티브가 된 실화, 소년(수라즈 샤르마 분)의 종교에 대한 관점 부터 세계관에 대한 시점까지 다양하다.
소울푸드에서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통해 리처드 파커와 소년 파이의 관계를 바라보도록 하겠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삶의 추동과 죽음의 추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는 인간을 본능 덩어리로 정의했다. 프로이트가 생각하는 인간은 비관론적 존재로 그가 말하는 구조이론에서는 언제 쯤 도덕교과서에 나왔던 원초아, 자아, 초자아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관전 포인트는 바로 이 부분이다.
You must be 'thirsty' 파이가 인도로 떠나기 전 기독교를 알게 되었을 때 신부님이 파이에게 한 말이다. thirsty, 목마름은 사실 리차드 파커(벵골 호랑이)의 본명이다. 이 부분은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데, 이 녀석 이름이 사실은 서스티, 동물원으로 올 당시 서류 상 기입이 잘못되어 리차드 파커라 불리게 되었다. '너는 목마름'이라는 신부님의 말은 어쩌면 소년과 호랑이를 겹쳐 보게 해 줄 암시적 대사였는지도 모른다. 후에 어른이 된 파이는 "전 리차드 파커가 없었으면 아마 죽었을 거에요."한다.
당장의 생존이 눈 앞에 걸려 있는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야생의 본능으로 살아 온 호랑이, 신에 대해 궁금해 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이상을 바라보는 한 인간이 살아남은 놀라운 사건은 서로의 영역 보전으로 가능했다. 이러한 '공존'의 모습은 굳이 두가지 객체를 끌어오지 않아도 설명이 가능한데, 그 이론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프로이트의 구조이론에서 원초아는 쾌락의 추구가 주요한 목적으로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고 설명한다. 자아는 현실세계와 접촉하며 욕구의 지연 및 욕구에 대한 적절한 해소방안을 모색하는 존재다. 초자아는 자아에서 분화되는데 옳고 그름,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판단하며 도덕, 완벽에 원리로 작동된다.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는 원초아를 바로 리차드 파커라 할 수 있다. 구명보트의 천으로 가려진 부분을 무의식의 영역 드러난 부분을 의식의 영역이라 가정했을 때, 리차드 파커가 처음 나타난 곳은 가려진 부분(무의식의 영역: 본능)이었다. 굶주린 리처드 파커가 파이를 공격하는 모습은 죽음의 추동(타나토스), 프로이트가 말하는 공격성이다.
반대로 현실을 고려하는 자아와 더 큰 이상을 이루려하는 초자아를 가진 모습이 소년 파이다. 본능으로 날뛰는 리차드 파커와 함께 살기위해 노력하는 이 아이의 안간힘은 단순한 호랑이와 인간의 감동대작, 사이좋고 아름다운 표류기와는 다른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한다. 영화에서 파이는 리차드 파커와 함께 살아남기에 성공한다.
의식의 영역과 무의식의 영역의 영토분쟁은 끊임없이 있었으나, 파이는 결국 리차드 파커와 함께 살아남았다. 이 이야기를 한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으로 대입해 생각해 보아도 좋다. 자아는 초자아라는 이상과 함께 원초아(무의식, 본능)을 지배하려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청난 본능으로 이루어진 무의식의 영역을 다스리며 살아가기 때문.
망망대해에서 227일을 함께한 파이와 리차드 파커는 멕시코 해안에 도착한다. 내면과의 끊임없는 대화, 죽음에 대한 공포, 생존에 대한 욕구가 가득했던 어딘지도 모르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뭍으로 온다. 이곳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 사회로의 적응이 필요한 곳이다. 이 곳에서 파이를 살게 한 원초아(무의식)로 큰 역할을 한 벵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가 기지개로 파이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밀림속으로 사라진 것은 프로이트의 구조이론을 빌려 생각해 보아도 기분 좋게 해석이 되니, 어찌 파이와 리차드를 따로 떼어서 생각하겠는가.
영화는 이와 같이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것 외에도 인생에 대한 큰 그림과 통찰, 순발력, 살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하게 한다.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의미있는 어드벤쳐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 보고 나면 '옳거니!'하고 깊은 통찰을 얻게 될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주말에 뭐 할까 하는 당신에게, 주말에 영화를 볼까 하는 당신에게, 주말에 집에만 있었던 당신에게, 아직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지 못한 당신에게 추천한다. (참고로 3D로 생생한 체험을 적극추천한다)
'소울푸드: 리뷰 > 오늘은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어의 정원, 상한 감정의 치유 (17) | 2013.10.04 |
---|---|
7번방의 선물, 본격 힐링 감옥 이야기 (0) | 2013.03.11 |
레미제라블, 나는 꿈을 꾸었네 (13) | 2012.12.31 |
26년, 기억하라 518 (14) | 2012.12.11 |
늑대소년, 순수에 대한 열망 (10) | 2012.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