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뛰쳐나오지 못한 그 도가니 속

어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 잠실교보문고에 갔다. 예상했던대로 어느때와 다름없이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쪽에는 '도가니'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책을 들었다 놓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부분부분 읽어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훑어보기도 하고, 작가의 말도 읽어보기도 하면서 영화와 어떤 부분이 다른지를 살짝 들여다 보았다. 책을 다시 들었다 놓기를 수차례. 결국 문화를 통해 영화를 해석해준다는 책 한권을 사들고 서점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역겨운 현실을 한글자 한글자 읽고 싶지가 않았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시간들여 책을 사러갔지만 결국 살 수 없었다. 
영화를 보기위해 지난주 토요일 영화관을 찾았다. 보는 내내 분노로 손이 덜덜 떨렸다. 그 날밤, 집으로 돌아와 무언가를 쓰려고 했지만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월요일, 집 떠나간 쏘울과 날뛰던 이성을 되찾고 대한민국 전체를 도가니로 몰아넣은 '도가니'를 이야기하겠다.

나는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도가니는
도무지 '영화는 영화다'라며 가볍게 마음 한구석에 넣어 둘 수가 없다. 공지영씨의 장편소설 '도가니'를 영화화 한 이 영화. 단순히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그친다면 '그런 일이 있을 법도 하지만, 너무 극악하다' 정도로 말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실제 사실이다.
광주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도가니는 개봉이후 전국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광주인화학교는 영화에서 무진자애학원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말하는 더러운 '자애'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자애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더럽고 추악한 진실 앞에 맞선 단 한사람이 있으니, 그 역할이 공유에게 주어졌다. '공유에게 주어졌다'라는 표현보다 공유가 도가니 속에 뛰어들었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선물로 받은 작품을 읽은 공유가 영화화를 제안하면서 이 사건이 세상에 더 넓게 알려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공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커피프린스에 나오는 왕자님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왕자 옷을 벗었다. 그리고 미술선생님 강인호(공유 분)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싸우기 시작한다.


알고싶지 않은 너무 불편한 진실

알고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 한 두개가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에도 급수가 있다면, 이보다 심각할 수 있을까. 들리지 않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장애를 악용해 성폭행을 일삼은 그들의 불편한 진실 앞에 이 영화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맞서고 있다.
도가니
1. <공업>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 단단한 흙이나 흑연 따위로 우묵하게 만든다. [비슷한 말] 감과
2.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가니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아이들에게 광주인화학교는 쇠붙이를 녹이는 단단한 그릇 같은 곳이었다. 그 단단한 그릇안에서 아이들은 까치발을 하거나 발을 동동구르며 그저 당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강인호와 서유진(정유미 분)은 악으로 똘똘 뭉친 무진자애학원과 무진의 교육청, 경찰서, 시청이라는 거대한 권력앞에 직면한다.

그러나, 돈이 곧 정의다

그러나, 돈이 곧 정의다. 영화에서 가해자인 그들은 온갖 방법을 총 동원해 받아야 할 벌을 받지 않는다. 말도 안되는 논리인 '전관예우'와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경우 부모와의 합의를 보면 된다는 법적절차들을 내세워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부모에게는 돈 몇천정도 찔러주고, 승진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던 검사에게는 대형로펌회사라는 달콤한 유혹으로 꼬득여 처벌을 피한다. 
양의 탈을 쓰고,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모두 짓밟아 버린 그들이 겨우 징역 1년 정도의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는 어이없는 장면을 보면서 이게 바로 '솜방망이처벌'이로구나. '옳다구나!' 했다. 결국은 돈 없고 들리지않는 아이들이 죄인이지, 돈은 있는데 개의 자식인 그들이 죄인은 아니었다.   

도가니를 보고, 오랫동안 분노하길 바란다


솜방망이 처벌로 처벌을 받는 둥 마는 둥 한 후, 광주인화학교 사건의 장본인으로 고발, 구속되었던 교직원들은 다시 복직되었다. 또한 현재 인화원 등 '우석'법인은 정관변경(명칭변경 및 법인의 사업영역에 지적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을 추가)을 재추진하는 한편 버젓이 학교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사건을 고발한 선생은 학교에서 해임되었으나, 학생을 성폭행한 교사는 복직되었다.
도가니가 영화화되면서 크고 작은 움직임이 일고 있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서명운동이 계속되고 있으며, 광주인화학교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우려되는 사실은 우리가 이 사건을 쉽게 잊을까 두렵다. 오죽하면 한국인의 냄비근성이라는 말이 있을까. 나 또한 그렇다. 잘 화내고 잘 잊는다. 
또는 인화학교 사건이 해결된다고 해서 더러운 세상이 깨끗해지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 중 하나는 도가니는 이 세상 전체를 바꿔보고자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 전체를 세탁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이 영화가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아직도 학대받고 있는 아이들을 들끓는 도가니 속에서 하나 둘 구출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각자가 가진 냄비에 불을 지필 때이다.  

밝혀진 진실과 그 이후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 서명, 사건관련 카페, 인화학교 사건에 의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 재추진에 관련된 기사 링크를 '더보기'로 첨부한다.

정리되지 않는 포스팅 때문에 심난했다. 영화에 나오는 공유처럼, 나 또한 아무 힘없는 소시민 중 한사람이기 때문이다. 대단한 권력도, 엄청난 재력도 없다.
영화를 보는 동안 심장이 식도를 타고 넘어오는 것만 같았다. 이 감정을 기억하련다. 그리고 대단한 권력도, 엄청난 재력도 없는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영화리뷰들을 보던 중, 어느 네티즌 한명이 쓴 글을 보았다. '너희들이 이렇게 분노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너희들이 이렇게 광분하고, 영화를 봐 봤자 이 사건으로 피해 본 아이들이 좋은 게 아니고 작가 공지영과 감독 황동혁 배를 불리는 거다.'
정확하게 인용한 글은 아니고, 저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알려야 하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 작가와 감독이 배불리 먹고 마시게 되는게 그렇게 억울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도 이 영화를 보기를 바란다. 진실을 밝힌 그들이 너무 지치지 않도록,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우리를 깨워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 그래서 영화를 보기 바란다. 그리고 당신도 그 진실에 참여할 수 있기를. 

도가니에 대한 리뷰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화요일이다.

도가니
감독 황동혁 (2011 / 한국)
출연 공유,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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