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욕망의 끈끈이주걱

10월 첫날 아침, 토요일도 출근중인 상쾌하지 못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는 토요일마다 격주로 출근을 한다) 버스를 타기위해 파워워킹을 하면서 주파수를 맞추다가 SBS 103.5 '정석문의 섹션 라디오'에 운명처럼 내 귀가 고정되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고 하자.
마침 방송에서는 다단계 피해에 대한 보도가 한창이었다. 필자는 다단계에 대한 나름의 살 떨리는 인연이 있다. 20대 초반 다단계회사에 끌려가서 2박 3일간 끈질기고 집요하게 말도 안되는 그 사업을 하라는 강요를 당해 본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거마대학생, 다단계 경험담, 다단계 혼숙이 다단계와 관련된 키워드인 요즘이다. 각종 기사들과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들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실제 겪었던 다단계의 추억을 생생하게 전하고자 한다.

1단계, 호시탐탐 당신을 노리고 있다

가장 흔하게 당신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당신이 알고있는 누군가를 통해서다. 아는 친구, 동창, 선배, 후배, 친인척 등 그 루트는 다양하고 방대하다. 내 친구 A의 경우 300만원 정도의 피해를 본 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했다. 그 후 A는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어가며 부모님의 도움으로 빚청산을 하고 다단계지옥을 탈출했다고 한다. 친구 A의 경우 그다지 친하지 않은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마침 A는 돈이 필요했고, 동시에 일자리가 필요했다. 뜻하지 않은 반가운 전화에 A는 마음을 열게 되었고 그런데다가 이렇게 어려웠던 때에 마침 일자리를 알아봐 준다는 동창이 너무 고맙기만 했단다. 그래서 아무 의심없이 발을 들인 곳이 바로 다단계. 그후 A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될 것만 같은 그 사업에 열을 올리다가 현실적으로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그 일을 그만뒀다. 
필자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사이좋은나라에서 어느날부터 갑자기 친한척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인터넷 세상이란게 어쩌다가 친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큰 의심없이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밥을 한 두번 같이 먹게 되는 일도 생겼다. 다단계의 수렁에 빠져있던 B는 아무래도 필자를 유학을 가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이좋은나라 클럽'에서 알게 된 듯 했다. (당시 유학에 대한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B는 나에게 인생 사는 게 너무 힘들다며 가까운 근교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공통된 관심사(디자인 유학)로 친해졌다는 나름의 신의를 갖고있는 나는 그렇게 힘들다면 함께 가주자는 마음으로 동행을 결심한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어디로 갈지도 확실히 밝히지 않고 어디로든 떠나자던 B는 만난 당일 근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당 어디쯤으로 날 데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B는 어디로 가는지 아리송해 하는 나에게 여행가기 전에 잠깐 들를 데가 있는데 '토탈 마케팅'하시는 훌륭한 분들을 너한테도 소개시켜주고 싶어서 잠깐 들렀다 가는거라 했다.

이쯤 되면 감이 빡 왔어야 했다. 감이 빡하고 오기엔 난 너무 어렸다. 너무 20대 초반이었지, 아마.

친구 A가 걸려든 수법은 알고있는 누군가를 통해 어릴적 추억의 공감대를 형성, 사는 이야기로 마음을 열게 한 후, 다단계로 유인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법이다.  
다단계 꿈나무 B가 나에게 다가온 수법은 '인터넷 예정자'를 만드는 방법이다. 여기에서 예정자란 쉽게 말해 다단계로 인도할 대상을 뜻한다. 다단계지옥을 탈출 한 뒤 인터넷을 통해 다단계에 대해 알아보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인터넷 예정자를 정한 뒤, 인터넷 예정자의 관심사를 파악, 분석하여 인터넷 상에서 친분을 쌓는다. 그 후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시도하여 한 두번 만나서  밥을 먹는다. 식사를 하면서도 예정자의 관심사를 공통의 관심사로 만들어 대화를 해 예정자가 더욱 마음을 열게한다. 사람이 가장 마음을 쉽게 열고 친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큰 시기가 한 두번 만난 후 한달 이내라 한다. 이런 심리상태를 적절히 이용해 만난지 한달 이내로 예정자에게 여행을 가자고 한 뒤 다단계 소굴로 유인하면 1단계는 성공이다.

필자의 경우는 단지 소중한 여행의 기회와 피같은 시간 2박 3일을 잃었던 씁쓸한 기억이지만, 친구 A의 경우 돈 300만원과 1년 가까운 시간을 손해봤다. 사실, 300만원은 약과다. 친구 A는 운이 좋은 경우다. 덧붙여 그 정도라면 더 늦기 전에 빨리 정신을 차렸다고도 볼 수 있다. 적게는 500, 많게는 3000, 5년에서 10년의 시간을 손해보는 경우에도 아니, 그 이상의 피해를 봐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2단계, 그들은 사이비 종교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계속되는 손해가 눈으로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그만두지 못하는지 다들 궁금하겠다. 다단계는 마치 사이비 종교와 비슷하다. 다단계 업자들의 1차 타겟이 되는 대상은 지방대 출신의 집이 어려운 대학생이다. 그들의 약한 심리상태를 알고 다가와 유혹한다. 그리고 곧 현실이 불안한 어려운 학생들은 달콤한 꼬임에 빠진다. 실제로 어쩌다보니 가게 된 그 다단계 회사에는 사투리를 쓰는 어리숙한 시골 청년들이 많았다. 혹은 명문대생인데 그렇게 형편은 좋지 못하고 사회에 불만은 한가득인데다가 성공에 눈이 먼 헛똑똑 청년들도 개중에 있었다.
이런 연약한 심리상태에 있는 청년들에게 너희들도 나처럼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어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철저하게 세뇌시키는 교육과정이 있다. 교육내용은 주로 성공하는 노하우를 알려준다. 업체 내에서 어느정도 직급이 있는 사람이 나와서 강의를 하는데, 주된 내용은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가'로 사실 대부분은 소설이다.
사이비종교 집회같은 그들의 집회는 다음과 같다. 강의가 시작되면 예정자는 제일 앞에 앉게 되고, 나를 감시하는 많은 눈들이 내 뒤에 모두 앉는다. 강의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모두가 한 목소리로 '네!'라고 한다. 이렇게 간혹 대답하는 방식은 모든 강의에서 이루어지며 강의를 진행하는 내내 청중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반응한다. 군중심리를 가지도록 하기위해,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꾸준히 세뇌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의가 끝나면, 나를 이곳으로 이끈 B와 한팀인 2인, 총 3명이 나를 설득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2박 3일 동안 강의와 설득의 시간이 반복된다. 그들은 합숙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예정자이기 때문에 예정자인 나를 데려온 그들과 나는 모텔 등등의 숙박업소를 빌려 생활했다. 집에도 못가게 하고 죽을 뻔 했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사이비 종교의 가장 큰 특징이 가정파괴다. 집에 못 들어가게 하고, 모든 것을 종교 단체에서 해결하도록 강요한다고 한다. 다단계에 빠져있던 그들도 매우 비슷했다. 나는 그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집에 좀 가라!'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236609&cloc=olink|article|default


3단계, 당신은 곧 다단계 광신도가 된다


뻔히 알면서도 왜 2박 3일이나 다단계에 잡혀 있었냐고 묻는 사람이 있겠다.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소굴을 탈출 한 뒤 다단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던 중 체격 좋은 형님 한분은 집기들을 훼손하고 싸우다가 뛰쳐나왔다는 경험담을 인상깊게 읽었다. 난 그렇게 싸우기엔 의외로 연약하달까. 엄청 열심히 말로 싸우긴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단계다라고 이야기도 해 보고 난 그냥 집으로 가겠다고도 해보고, 이 일에는 관심없다 등 별 수작을 다 부렸다. 다단계라고 이야기 할 때마다 뻣뻣하게 굳던 그들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건 그게 아니라 토탈마케팅이고, 프로슈머와 컨슈머가 합성된 어쩌구 저쩌구 라고 하면서 강의 때 부터 떠들어대던 그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하는데 결국 난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맘편히 있는 쪽을 선택했다. 어차피 밥도 공짜로 주고, 잠도 좋은 방에서 공짜로 재워줬다. 모처럼 결심한 여행의 기회와 어렵게 비워둔 시간은 어이없게 흘러가지만 나름대로 돈은 하나도 들지않는 장점은 있었다. (지겨운 다단계 이야기 듣는 것 빼고) 결국 힘들게 싸우며 에너지 소모할 게 아니라 다단계에 대해 배운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논리에 점차 설득이 되어가는 척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뒤통수 제대로 쳤다.

그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공을 들였다. 중간에 나를 설득하던 그들은 심각하게 안먹힌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어떤 무섭게 생긴 여자 한 분을 같은 테이블에 붙여서 이야기를 하게 하기도 했다. 본인은 명문 H대 재학을 하다가 CPA(공인회계사)를 봤다나 뭐래나. 그런데 CPA보다 이 사업이 훨씬 미래가 있다나 뭐래나. 그냥 CPA 100번 떨어져도 100번 다시 보는 게 더 현명하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게다가 그들은 절대 다른 사람 누구에게도 이 일을 상의해서는 안되며, 결국 스스로 결정해야 함을 강조했고, 업체에 대해서는 절대 알아보거나 이너넷으로 검색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으니 사람들이 이 사업이 좋기 때문에 시기해서 나쁜 말들을 써 놓았기 때문에 그 말들에 절대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집에 오자마자 바로 검색했다.  


집으로 돌아와 전화로 이 사업을 하지 않기로 최종적으로 결정을 했다고 통보(할 생각은 그 소굴에 들어 간 순간부터 없었다)하자 B는 격분했다. 그냥 안한다는 일이 격분하기 까지 할 일인지 의문스럽다. 그러면서 말하길, "오밥아, 난 네가 같이 이 사업으로 성공해서 꼭 유학을 갔으면 좋겠어."라는 말도 한다. 난 당당하게 말했다. "그거 백 날 해서 유학 못 갈 것 같아요."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245765&cloc=olink|article|default


다단계업체 견학후기 처럼 되어버린 포스팅은 여기까지다. 여기서 부터는 마무리를 해야겠다. 분노의 다단계 포스팅을 하다가 보니 글이 무척 길어졌다. 섹션라디오에서는 말하길, 다단계의 속임에 넘어가 학자금 대출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가 제대로 되고있지 않다는 사실이 큰 문제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대출을 받는 돈의 용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금융업계 측의 변화가 요구된다. 
또한 현재 나쁜의미의 다단계라 불려지는 수많은 업체들의 대부분이 방문판매도 합법적 다단계도 아닌 변종업체다. 그렇기 때문에 다단계가 '방문판매법'의 영향권 밖에 있어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정안에 대한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라 한다. 
사회에서 여러가지 피해를 막기위한 대책을 세우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다단계라는 욕망의 끈끈이주걱에 달라붙는 진짜 이유는 조금 일하고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욕심이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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