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모든 것, 사랑한다면

'내 아내의 모든 것'영화 장르는 멜로/애정/로맨스, 코미디다. 영화 글을 쓰려고 검색해 본 결과다. 영화가 별로였다면 "이러다가 망했구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한국영화산업 발전에 나의 소중한 시간과 약간의 돈이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지도 모를 것이라는 씁쓸한 생각으로 리뷰를 시작 하겠지. 

 

그러나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전혀 그럴 일이 없다. 아는 지인에게 감상평을 물으니, "지금까지 본 한국 영화 중 제일 재밌었어요" 하더라.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아르헨티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영어 제목으로는 'A Boyfriend for My Wife'라고. 아내와 이혼하고 싶은 남자가 아내에게 다른 남자를 붙여준다는 서구론적인 담론이 민규동 감독을 처음부터 사로잡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한국적으로 끌어낼 수 있던 접점은 여자의 외로움, 불안, 피곤함이었다고 감독은 말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나 불안과 외로움을 공유할 친구가 필요해서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결국 그 안에도 구원이 있는 것 같지는 않더라. 더이상 잘될거다. 잘할 수 있다는 최면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온 것 같다. 이제 새로운 마약이 필요하다."

 

 

그렇다. 민규동 감독의 말 처럼 요즘을 사는 우리들은 SNS의 일정부분, 그 이상을 기대며 살아간다.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여자 연정인(임수정 분)은 어찌보면 시시각각 새로운 자기 이야기, 내 생각들로 가득 찬 당신의 페이스북과 닮아있다.

아침에 볼일을 보는 남편에게 생과일 주스를 각기 다른 종류로 두 잔이나 건네며 "싸면서 시집 읽는 것 보다 마시는 게 덜 이상해"라고 하지를 않나, 자신을 아줌마라 부르는 신문 배달원에게는 "신문 보면 사모님이고 안보면 아줌마에요? 그렇게 막말하고 싶을 때 아줌마 호칭 붙이니까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아줌마면서 아줌마 소리에 치를 떠는 거에요" 라고 하기도 하고, 남편 회사 모임에 나가 사모님들의 틈 바구니에서는 "눈치를 안 보고 살아서 그래요, 예의만 지키면 눈치는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라며 쓴 소리를 한다. 세상을 등지려는 카사노바 장성기(류승룡 분)에게는 "자살도 살인입니다. 콩밥 먹어야 돼요. 아저씨가 뛰어내리면 그건 누가 치워요?" 라며 괴롭게하고, "아저씨, 동정의 대상이 되는 거 절대 싫죠? 그니까 저 동정하기 싫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 꼭 100원 받아야겠어요" 라며 100원 더 받으려는 택시 아저씨에게 일침을 놓기도 한다. 가끔은 진상녀, 때때로 정의의 수호자 같은 이 여자는 시끄럽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반면, 꽉 막힌 속을 뻥 뚫어 시원하게도 한다.

 


남편 두현(이선균 분)을 보면서 든 생각은 '차라리 싸우는 게 낫겠다'였다.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이야기를 차분하게 하려는 모습은 없다. 단지 싸우기 싫으니까 이혼하고 싶고, 이혼하고 싶은데 나쁜 사람은 되기 싫으니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상황을 유도하기로 한다. 그래서 전설의 카사노바라는 성기(류승룡 분)에게 부탁을 하게되는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모자라 보이기도 한 그런 남자다.

 


부탁을 받아들인 장성기(류승용 분)도 평이한 인물은 아니다. 느끼한 말투와 오글거리는 대사에 오버액션으로 여기저기서 큰 소리를 빵빵 터뜨려 주더니,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판타지적 인물로 자리매김 해간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아프리카어 등의 몇 개 국어는 기본이고 핑거 발레에 심지어 젖소의 젖을 짜는 기술, 요리, 샌드아트는 말 할 것도 없다. 더더욱이 중요한 사실, 돈이 많다.

 

 

두현과 정인이 서로 대화를 하지 않으므로 대화를 하게 한 매개체 같은 존재가 성기다. 영화는 인물들을 극단적으로 그려놓았지만, 그 내용은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오래만난 커플, 결혼이라는 현실에 지친 부부들에게 추천되고 있다고 한다.
영화 속 세 사람을 보면서 필자의 머리 속에 떠오른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그의 아내에게 "당신을 사랑해"라는 말 대신 "오늘 내게 긍정적 강화를 해 주어 고마워"라고 말했다. 미국의 신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1904~1990)다. 스키너는 인간 혹은 동물은 감정이 아닌 행동으로 모든 것을 '습득'하는 것이라 했다. 물론 심리학의 이론들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영화를 바라봐야 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지만 당신의 아내가 시끄럽다고 느껴질 때면, 당신이 아내에게 얼마나 긍정적 강화를 주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때가 아닐까.

스키너 아저씨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부정하기는 했지만 공감과 칭찬(긍정적 강화)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안겨줄테니 말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 (2012)

8.2
감독
민규동
출연
임수정, 이선균, 류승룡, 이광수, 김지영
정보
| 한국 | 121 분 | 201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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