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채널을 무심하게 돌리다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힐링캠프에 멈췄다. 박범신 작가였다. 전 작가가 아니라 죽을 때 까지 현역 작가로 살고 싶다는 작가의 말이 듣기 좋았다. 소설 를 알기 전 영화 를 먼저 알았다. 말하기 부끄럽게도 영화 를 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소설 를 보지는 못했다. 영화를 본 사람도, 소설을 본 사람도 제법 괜찮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전했다. 서점에 가서도 책을 한 두번 들었다 놨다 했을 뿐, 살까 말까 했을 뿐 사지는 않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작품인 는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상업적으로 일정부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소녀의 성적 매력에만 집중해 놓은 포스터를 개시했다. 그래서였다. 그래서 그마저 읽고 싶었던 소설도 선뜻 보겠다..
프리랜서로 나홀로 일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이렇게 오로지 창작활동으로 수익을 창출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사업자가 되어 사장님이 되는 것 아니라면 우리는 어딘가에 속해야만 한다. 조직이라는 울타리 말이다. 독일 최고의 명장 '폰 만슈타인(Erich Von Manstein)'은 훌륭한 리더와 그렇지 못한 리더를 네가지 타입으로 분류했다. 근면하고 유능한 타입, 게으르고 유능한 타입, 근면하고 무능한 타입, 게으르고 무능한 타입 이 네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리더와 관련한 이 이야기는 지금도 조직 내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적용된다. 폰 만슈타인 장군님 말씀처럼 열심히 일하는 지혜로운 리더, 똑똑하고 게으른 리더, 게으르고 멍청한 리더, 부지런하지만 멍청한 리더 이렇게 네 가지 타..
탄수화물 중독, 하루 24시간 중 12시간 이상은 '단 것'에 대한 생각으로 보내는 나. 내 나이 내일모레 곧 서른. 나의 애틋한 빵 사랑은 단순히 먹는 것에서 끝나지 못했다. '내 반드시 빵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리라'라는 사명을 안고 빵집 알바를 한다며 버둥거리기 시작했으니 드디어 빵모자 곱게 쓰고 포스기 앞에 서게 되었다. 일하게 된 빵집은 흥리바게트. 이 필담은 최근에 경험한 이야기니 최신 정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그 바게트에서 일하게 된 나는 열의를 불태우며 머리망도 사고 귀에 붙은 피어싱들도 떼어냈다. 빵집 알바의 옷차림이란 패밀리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는 망에 쏙 들어가 있어야하고 귀에는 장신구가 없어야하며 앞치마를 단정히 해야한다. 신발은 ..
사람나고 돈 났는데, 요즘은 돈 없이는 사람나기 힘든 세상이다. 금력이 우선인 시대에 돈이 모자라 신용카드의 노예, 일명 사이버머니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다음달에 나를 찾아올 청구서를 의식하지 않고 살았던 날들이 손에 꼽힐 정도. 직장인들이 종종 하는 농담 "월급은 스쳐갈 뿐" 그렇다. 월급은 스쳐간다. 월급이 스쳐가지 않으려면 매달 적금을 하고, 보험금을 내고, 학자금 대출 등의 규모가 큰 빚을 갚고도 '여윳돈'이라는 개념의 무언가가 남아야할테다.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정해놓은 적금, 보험료 등등을 내고나면 잔고는 다시 제로. 필자의 경우 무절제한 후식중독으로 늘 그러하긴 했으나, 그래도 억울하다. 점심 사먹고, 간식 사먹고 가끔 친구 만나면 도무지 내 통장엔 여유라는 게 보이지 않더라. 어느 알바..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연재'라는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 간헐적으로 해왔다. 동시에 블로그에 '심리학'과 관련된 칼럼을 연재하고 싶다라고 1년 동안 '생각'만 해왔다. 심리학과 실생활, 혹은 연애, 인간관계를 잘 엮은 칼럼을 적어보지도 못하고 구차한 변명을 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공식적으로 심리학도가 되지 못했기 때문. 그냥 쓰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유형의 교육을 받지 않아도 개인적으로 공을 들여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해서 글이라는 걸 쓸 수는 있지만 구태여 변명을 하자면 '칼럼'이라며 당당하게 내놓기에는 부끄러울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학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것이 칼럼은 국어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더라. 칼럼 column [명사] 신문, 잡지..